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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의 시대 - 그것은 X 선에서 시작되었다. 목록

조회 : 3701 | 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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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타는 애완견 레오를 집에 남겨두고 방사능의 기원을 둘러 싼 여행을 홀로 시작했어요. 세계 최초로 「원자의 불」이 켜진 순간을 찾아가 보았답니다. 시간여행자는 물리학자의 중얼거림에 크게 놀라는데…

 

저번에는 원자력 시대의 시작을 고한 퀴리 부부의 실험현장인 파리를 방문했었지요. 라듐을 발견하게 된 실마리는 선배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 방사능 연구였습니다. 베크렐의 발견에도 계기가 되었던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었답니다. X선을 원점으로 19 세기 말부터 시작된 피폭의 시대를 장식한 연구자들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손 안의 뼈가 찍혀 나오다 - 1895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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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

 

1895년의 뷔르츠부르크 대학 물리학연구소. 희끗희끗 한 긴 턱수염의 뢴트겐 교수가 암실에서 새로 설비한 방전관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50살의 뢴트겐 교수는 방전관에서 나오는 음극선(후에 전자라고 판명) 추시실험(남이 실험한 결과를 그대로 따라 해 보는 시험)에 몰두하고 있었답니다.
11월 8일, 방전관에서 1m 정도 떨어진 곳에 둔 백금시안화바륨의 형광판이 빛났습니다. 방전관과 형광판 사이에 두꺼운 책을 두어도 빛은 사라지지 않는군요. 손으로 가리자, 손의 희미한 형태 가운데 뼈의 진한 형태가 찍혀 나왔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의아해하는 뢴트겐. 그로부터 7주간, 실험을 거듭하여 음극선이 아니라고 확신하였습니다. 12월 28일, 「신종 방사선에 대해」라는 제목의 논문을 고향의 물리의학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전리방사선 「X선」의 발견입니다.
이 발견은 이웃나라 오스트리아의 신문 『디 프렛세』가 새해 1월 5일자 특종 기사로 다루었답니다. 논문에는 뢴트겐 부인의 손 뼈와 반지를 투시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해, 뉴욕에서 열린 전기박람회에서 에디슨이 기획한 X선 공개실험에 관객들이 몰려들었지요. 투시실험의 모델이 되었던 조수 ‘다리’는 등에 암이 발생하여 1904년 39 세로 사망. 최초의 피폭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뢴트겐에게 회견을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했습니다다. 그 일이 일어난 후부터 「연구가 바쁘다」라며 기자를 멀리했다고 하는데요. 뢴트겐은 1901년, 제 1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답니다.

 


핵분열 발견은 제 2차 세계대전 1년전 – 1938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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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피폭을 가져오는 원자력에너지의 해방기술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진 1938년의 독일에서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교외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12월 19일 깊은 밤, 핵 화학자인 오토 한은 프리츠 슈트라우스만이 가져온 측정 데이터가 흥미로웠지만 당혹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라늄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요. 예상했던 결과는 우라늄보다 무거운 초우라늄원소가 생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오토 한

 

4그런데 데이터는 우라늄의 반 정도의 원자량인 바륨이 생성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요. 한은 같은 밤, 옛 공동연구자로 나치스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에게 설명을 구하는 편지를 씁니다. 그녀의 답장은 「무거운 원자핵이 분열할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부정적이었지만 곧 긍정하게 됩니다.
한과 함께한 사람들은 「망설이면서도 이 기묘한 결과를 공표한다.」라며 조심스럽게 실험을 보고하였지요. 이것이 원자력 시대의 개막을 알린 「핵 분열」발견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마이트너는 굉장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 분열 반응을 이론적으로 설명합니다.

 

 

 

 리제 마이트너


이 대발견이 전쟁 중에 이루어진 것은 슬픈 운명이었습니다.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손에 넣을까 두려워한 유럽의 망명 과학자들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움직여 원폭개발의 맨해튼 계획을 발촉하였지요. 1942년 12월 2일, 시카고 대학 풋볼 스타디움의 스탠드 아래 모퉁이, 흑연과 우라늄을 6m 높이로 쌓은 최초의 원자로 「시카고 파일」에서 연쇄반응이 진행되어, 핵분열을 지속하는 임계(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출력은 0.5W에 지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원자의 불」이 켜진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항해사가 신세계로 상륙했다」라는 암호로 임계 보고가 미국정부의 국방연구위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4이 프로젝트의 리더는 이탈리아에서 망명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속도가 늦은 중성자에 의한 핵반응 발견자).
개발팀은 이탈리아산 와인으로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맨해튼 계획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헝가리 태생 망명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가 페르미와 악수하면서 들은 중얼거림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은 암흑의 날로 인류사에 기록되겠지요.」 

 

 

 

 

 

 

                               엔리코 페르미

 

 

 

- 발행인 : 일본 독립행정법인 과학기술진흥기구
- 출처 : Science Window / 2011년 10, 11월 (통권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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