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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 갈릴레오의 출세를 도와줬어요 목록

조회 : 3278 |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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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세계 천문의 해. 시간과 공간의 여행사는 애견 레오를 데리고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천체 망원경을 만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작업장이 있는 베네치아공화국의 파도바로 향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서쪽 30km에 있는 파도바는 대학이 있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45세의 갈릴레오는 명문 파도바대학에서 수학교수를 하고 있었어요. 수업을 했던 교실은 400년 후의 지금까지 관광명소가 되고 있지만, 1609년 당시에는 그는 적은 월급에 허덕이는 신분이었죠. 해부학의 할아버지로 불리우는 베네사리우스 같은 의학부 교수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갈릴레오는 유학생을 하숙 시키거나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어요.

 

 

장난감인 통안경이 관측기가 되었어요. – 1609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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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베네치아에서 망원경을 실제로 실험했답니다. 갈릴레오가 지방 유력자에게 종각에서 멀리 있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했어요. (이탈리아 1942년 발행)

네덜란드사람이 렌즈를 조합하여 통안경을 고안했다는 것을 들은 갈릴레오는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해 5월부터 한창 정보를 모으고 있었었죠. 8월 21일, 자택에 있는 공방에 들렀더니, 광학도면과 다양하게 연마한 볼록렌즈나 오목렌즈가 흩어져 있었죠. 그는 집에 없었어요. 빨간 천으로 둘러싼 통을 소중하게 안고 베네치아의 산마루코 광장으로 외출했다고 했어요.
우리들도 따라가 봤더니 유별나게 높은 종각 위에 갈릴레오를 둘러싸고 공화국 원로원 의원들이 모여 있었어요. 길이 65cm, 구멍지름 4cm 정도의 원통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후에 도제(공화국 대통령)가 된 안토니오 프리우리였어요. 3km 앞의 무라노 섬 사람들의 움직임도 알 수 있어요. [이것은 군사정찰에도 사용할 수 있겠군요]하고 감탄하는 목소리가 났어요. 드디어 천문학에 혁명을 일으킨 갈릴레오식 망원경이 세상에 나오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같이 간 레오가 쓰레기통에서 주어온 도면에서 갈릴레오가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죠. 세상에 나돌기 시작한 통안경은 도수가 강한 볼록렌즈와 도수가 약한 오목렌즈를 조합한 것이므로, 배율은 2~3배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형상이 흐릿하게 보였어요. 갈릴레오는 이론적인 고찰에 따라 물건에 닿는 렌즈에는 도수가 약한 볼록렌즈를, 눈에 닿는 렌즈에는 도수가 강한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배율을 높이고 형상이 일그러지지 않게 했어요.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던 통안경이 관측기기인 망원경(텔레스코프)로 진화된 것입니다.
망원경을 기증받은 원로원과 파도바대학은 즉시 갈릴레오에게 대학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직함을 주고 월급을 배로 올려 주었어요. 종각에서의 연출한 목적대로 효과를 얻었지만, 갈릴레오의 훌륭한 점은 지상에서의 이익에 만족하지 않고, 한층 더 개량을 거듭하여 망원경을 우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배율을 20~30배로 올린 망원경으로 우선 달의 표면을 관측했답니다. 그리고 경이로운 느낌을 보고했습니다.
[달의 표면은 많은 철학자들이 달이나 다른 천체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는것처럼 매끄럽고 완전하게 둥근 것이 아니다. 반대로 기폭이 대단하게 심하고, 닿는 곳마다 찌그러지거나 튀어나와 있다. 산맥이나 깊은 계곡에 새겨져 있는 지면과 별 차이가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저,『별세계의 보고』)

 

 

메디치가(家)의 권위를 빌리다. – 1610년 3월 21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철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있던 천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실제의 형상으로 나타났어요. 1610년 3월 12일에 간행된 『별세계의 보고』를 읽어 보았어요. 목성의 4대위성의 발견이 기록되어 있었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위성의 위치를 그려 놓고 [유피텔(목성)의 자식답게 이 별들은 그 옆을 조금도 떨어지지 않아요]라고 보고 되어 있었어요. 갈릴레오는 이러한 위성들을 토스카나의 귀족인 메디치가의 코지모 2세에게 바치고 [메디치별]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메디치가의 권위를을 빌려서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고향의 토스카나 공화국에서 연구직을 얻고 싶은 속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부를 한 덕택으로 갈릴레오는 그 해 6월에 토스카나 지역의 제1의 수학자 겸 철학자로 뽑혀서 피렌체로 옮기게 되었죠. [메디치별]은 코페르니쿠스설을 널리 알리는 데에 하나의 역할을 하게 되지만, 이름을 붙인 자와의 약속과는 다르게 영원하게 빛나지는 않았답니다. 드디어 [갈릴레오위성]이라고 불리우는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카리스토가 되었어요.
이번에는 400년 후의 [목성계의 보고]를 갈릴레오의 자택으로 배달했어요. 이오에 한창 타오르는 활화산이 발견된 것이나, 에우로파의 얼음벌판의 아래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 등에 관한 내용이었죠. 1633년, 종교재판에서 박해를 당해도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갈릴레오도 자신의 이름에 관계되는 목성탐사위성이 나중에 쏘아 올려져 목성의 위성에 다가가서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진보된 사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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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체망원경의 발전으로 일본이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설치한 [스바루]. 망원경으로 우주 전체를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일본 2008년 발행)

 

(C) Science Window 

- 발행인 : 일본 독립행정법인 과학기술진흥기구
- 출처 : Science Window / 2009년 9,10월 (통권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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