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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 브라헤(Tycho Brahe Measures the Sky) 목록

조회 : 1553 | 2005-12-26


티코 브라헤는 그가 살던 당시의 가장 훌륭한 관측 천문학자였다. 1546년부터 1601년까지 살았던 티코 브라헤는 지구와 태양 중 어느 것이 태양계의 중심인가하는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도전했다. 이것을 위해 티코와 그의 동료들은 망원경이 사용되기 이전으로서는 가장 정교한 관측 기구들을 갖춘 천문관측소를 만들었다. 티코 브라헤는 이 관측소의 관측을 통해 별과 행성의 위치와 밝기에 대한 정확한 관측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브라헤는 그의 관측 자료를 이용하여 태양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지만 그의 자료들은 그의 조수였던 요한 케플러에게 넘겨져 태양계의 운동 법칙을 알아낼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브라헤는 1572년에 있었던 초신성 폭발을 관측한 것과 1577년에 나타났던 혜성이 기상 현상이 아니라 천체라는 것을 밝혀낸 것, 그리고 금속으로 만들어진 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고 금속으로 만들어진 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티코 브라헤.

덴마크의 천문학자. 스웨덴 남부 헬싱보리(당시의 덴마크령)의 크누스트루프에서 태어났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법률을 배웠으나 후에 천문학으로 전향하였다. 1562년 라이프치히대학을 거쳐, 독일·스위스에 유학, 1570년 귀국하였다. 1572년 카시오페이아자리에 나타난 새로운 별(초신성)에 대하여 자세한 광도관측을 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1575년 헤센의 영주 빌헬름 4세의 천문학자로 있었는데, 덴마크왕 프레데리크 2세가 빌헬름으로부터 브라헤에 대해 듣고 그 재능을 인정하여 벤섬[島]을 내주었다. 브라헤는 이 곳에 우라니엔보리라는 천문대를 설립하고(1576), 항성과 행성의 위치관측에 전념하였다. 1577년 나타난 대혜성을 관측하여,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혜성이 지구대기의 현상이 아니라 천체임을 입증하고, 화성의 운동을 관측하여 화성이 충의 위치에 놓일 때는 태양보다 지구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밝혔다.





그가 행한 관측의 정밀도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가장 훌륭한 것이었으며,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자료는 제자이자 조수인 J.케플러에게 넘겨져, 케플러가 후에 I.뉴턴에게 많은 영향을 준 행성운동의 세 법칙을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지구공전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항성의 연주시차(年周視差)를 제시하고 실제로 측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장비가 부족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N.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정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다만 지구 주위를 달과 태양이 공전하고, 행성은 다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신우주설(新宇宙說)을 제창하였으나 이를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요저서로 《신성(新星):De Nova Stella》(1573) 《Astronomiae Instauratae Mechanica》(1598) 《Astronomiae Instauratae Progymnasmata》(16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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