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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천문역법서인 칠정산(七政算) 목록

조회 : 10782 | 2007-04-04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역법서인 ‘칠정산(七政算)’은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14년(1432년)때부터 편찬을 시작해 10년 만에 완성하여 간행하였어요. 칠정산은 조선시대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삼은 우리의 역법서로 이것을 통하여 일식과 월식의 예측 및 날짜와 계절의 변화 등을 알 수가 있게 되었어요. 최첨단 천문역법서인 칠정산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칠정산



역법(曆法)의 필요성


‘역법(曆法)’이란? 시간을 나누어 구분하고 날짜의 순서를 매겨나가는 방법을 말해요. 여기서 시간이나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겠죠. 그래서 달과 같이 어떤 행동을 되풀이하는 천체의 주기현상을 기준으로 하였어요. 물론 이들 주기현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밤과 낮이 바뀌는 것, 4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달의 위치와 모양에 변화가 생기는 것 등이 역의 중요한 기준이 되죠.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여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단위와 주기를 택하여 일정한 역법을 정한 것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태양의 주위를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으며, 달은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어요.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여 태양의 일주운동을 하루, 태양의 연주운동을 한 해라고 정하였어요.

이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태양력의 기초이며, 여기서 1일이라는 주기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뚜렷하고 중요한 시간 단위예요. 역법은 영어로 ‘calendar’인데 이것은 ‘선포한다.’는 뜻의 라틴어인 ‘calendae’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달력이라는 뜻이 있어요.



지구의 주기운동


그러면 왜 역법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백성이 농업과 어업 등의 생업에 잘 종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 농업이 백성들 삶의 전부였던 당시에는 하늘과 계절의 움직임을 읽고 백성들에게 계절과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의 중요한 의무이자 책임이었기 때문이죠.

요즘 우리들이 사용하는 달력은 역법 계산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달력이 없으면 매우 불편하겠죠. 역법이 있었기에 달력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에요.

 



달력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서 칠정산(七政算)의 탄생


오래전 우리나라는 중국의 역법서를 도입하여 날짜를 뽑아 사용하였어요. 삼국시대에는 당나라로부터 천문역산을,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천문학을 각각 도입하여 우리 실정에 알맞도록 수정하고 보완하여 독자적인 역산(曆算)의 발달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고 있어요. 따라서 고려시대의 한국사와 중국의 같은 시기를 비교해보면 날짜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죠. 고려 역법은 그 기본적 틀이 822년 당나라가 만들어 사용했던 역이었어요.

이 틀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수정하여 독자적인 역을 만들었던 고려는 아랍천문학의 영향까지 흡수한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이 1280년 완성되자 이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충선왕은 중국의 천문 역산가들의 환심을 얻어서라도 새 역법을 고려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해요. 일부 계산술을 익히지 못했던 고려의 역산학자들은 충선왕 9년(1309년)부터 이 역법을 채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어서 1343년에는 수시력 계산에 필요한 수표가 완성되었어요. 고려 말의 이와 같은 천문역산의 발전은 조선시대 초기에 새로운 역법 탄생의 기초가 되었어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초기까지는 중국의 역법을 빌려서 사용함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오차가 발생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중국의 역법이 중국의 위치에서 계산한 것이고 거기에도 다소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세종대왕은 이제는 역법도 중국과는 달라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백성들에게 절기와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려면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한 천문계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마침내 세종은 지금까지 사용해온 중국의 모든 천문학의 이론을 정리하고 개선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천문ㆍ역법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고려시대부터 왕립 천문기상대 역할을 하던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꾸고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여기에 간의, 혼천의, 규표 등과 같은 천문관측 기구를 설치하고 별자리를 비롯한 일출과 일몰, 일식과 월식, 혜성과 행성들의 운행을 관찰하도록 하였어요. 당시 천문학의 대표학문은 역법이었는데 역법의 정확성은 일식과 월식의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검증을 받았죠.

일식 날에는 임금도 나와서 함께 관찰을 하였는데 일식 시간이 잘못 계산되었을 경우에는 관측관리가 큰 벌을 받았다고 해요. 세종이 즉위한 지 14년째인 1432년 산학 연구에 문과 급제생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을 대거 투입하였어요.

혼천의


그 후 10년 만인 1,442년 마침내 ‘칠정산 내편(內篇)’과 ‘칠정산 외편(外篇)’이 완성되었고 조선시대 천문역산의 연구는 그 절정에 이르게 되었어요. 이러한 조상들의 노력으로 태어난 칠정산으로 조선시대의 천문학자들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식과 월식을 포함한 천체운동을 더욱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식과 월식


칠정산 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을 완전히 소화한 작품이며, 칠정산 외편은 역시 원나라 시대 때 중국에 들어온 아랍천문학을 소화해 낸 작품이에요. 그때까지 가장 발달했던 수학적 천문학을 완전히 수용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천문학은 당시 세계 최고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것이죠. 이에 상응하는 비슷한 성과가 일본에서는 1682년에 일어난 것을 상기해 볼 때 칠정산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분명하고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칠정산 내편은 원둘레를 365.25도, 1도를 100분, 1분을 100초로 잡고 있으며, 1년을 365.2425일, 1달을 29.530593일로 정하고 있어요. 여기에 비해 칠정산 외편은 원둘레를 360도, 1도를 60분, 1초를 60초로 한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고 있으며, 1년을 365.242188일로 정하고 있어요. 이는 현대의 값보다 1초 짧을 정도로 매우 정확했죠.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녹아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서인 칠정산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어요. 칠정산의 칠정(七政)은 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을 함께 아울러 칭한 것이에요. 이것이 오늘날의 일곱 요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칠정산 내외편


세종 때 만들어진 역법서 칠정산은 한양의 위도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우리나라 역서편찬의 기본이 되었어요. 이 역법을 통하여 일식과 월식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날짜와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등 새로운 역법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항상 연구하며, 뭔가를 찾아내어 생활 속에 적용하여 좀 더 과학적인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어요. 이러한 조상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후손들인 우리들도 늘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하겠어요. ^_^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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