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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견딘 석굴암의 신비 목록

조회 : 14862 | 2007-03-08


석굴암은 통일신라의 문화와 과학의 정수이자, 종교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재입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인공 석굴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불국사와 함께 1995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석굴암이 천년이란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지 석굴암에 담겨진 신비스러움을 하나씩 벗겨볼까요?



석굴암



석굴암 석굴의 방향이 동해구를 향한 까닭은?


석굴암은 신라시대 경덕왕이 세상을 떠난 역대 선왕들의 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당시 시중이었던 김대성에게 창건토록 했다고 전해지는데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년)에 완공하였어요. 그런데 석굴암 석굴은 왜 동동남 방향인 ‘동해구’를 향하고 있을까요?

동해구(東海口)란 글자 그대로 ‘동해의 입’을 말해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동해구에는 세 가지 중요 유적이 남아 있어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의 성군인 문무대왕의 유골이 있는 바닷속 무덤인 대왕암과 그것을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쌓은 축대인 이견대 그리고 왕의 은혜에 보답코자 세운 감은사가 바로 그것이에요.

석굴암


석굴암 창건에 앞서 80년 전에 이미 동해구에는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있었으며, 경덕왕의 바로 선왕인 효성왕도 화장 후 바로 이곳에 뿌려졌어요. 즉 경덕왕과 김대성에 의한 석굴암 조영에 앞서 이미 신라의 두 대왕을 이곳 동해구에 장사지냈던 것이죠. 이와 같이 신라의 으뜸가는 유적이 바로 동해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석굴암의 석굴이 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일찌기 일본인이 석굴의 방향은 토함산의 지형을 따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은 석굴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부족하거나 신라의 가장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어요.

석굴암에서본 동해구




아름다운과 비례의 극치인 석굴암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화강암은 단단하여 섬세하게 조각하기 아주 힘든 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의 모든 불상은 그야말로 완벽할 정도로 섬세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석굴암이 비록 규모가 작다고 말하지만 세계 어느 문화유산에 비해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정도예요. 이러한 사실은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당시 심사위원들이 석굴암을 직접 보고 나서 극찬을 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어요.

석굴암의 우수성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완벽한 배율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석굴암 본전불상은 균제비례가 적용되어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본전불의 얼굴과 가슴, 어깨, 무릎의 비율이 1:2:3:4 의 비율로 되어 있어 본존불상 자체를 1로 봤을 때 10분의 1인 균제비례가 적용되어 있는 것이죠. 균제비례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비트루비우스’가 주창하였는데, 인체에서 최고의 아름다움과 안정감을 주는 비율을 말해요.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비율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놀랍죠. 조상들은 석굴암의 각 공간마다 기하학적으로 이상적인 비례 배분을 적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것이 바로 신라 예술품들의 아름다움과 비례의 극치랍니다.

석굴암의 과학 속으로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석굴암의 독특한 건축법은 자연의 암벽을 직접 뚫지 않고 크고 작은 화강암을 사람의 손으로 차례차례 쌓아올려 만든 것이라는 데서 다른 나라의 석굴과 차별화되죠. 인도나 중국의 석굴은 모두 자연의 암벽을 뚫어서 내부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조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거대한 암벽을 뚫어 석굴을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고도의 축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인공 석굴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인공적으로 쌓아서 만든 석굴에 예술적으로 조각된 불상들이 배치되어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오직 석굴암밖에 없어요.

그러면 석굴암에는 어떤 과학적 원리가 들어 있을까요?



석굴암 내부도면


먼저 석굴암의 내부구조를 보면 네모꼴의 전실과 둥근 본실로 이루어졌는데, 본실의 천정은 돔형으로 돌을 쌓아올려 만든 것으로 당시의 발달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어요. 기단이 쌓인 맨 위쪽에 천장 덮개돌이 덮여있고 기단의 3층부터는 ‘감잡이돌’이라는 것이 박혀 있어요. 천정을 쌓는데 사용된 감잡이돌은 기단과 기단사이에 박혀 있는데 기단이 높아짐에 따라 크기와 형태를 다르게 하여 각단에 10개씩 박아놓았어요. 감잡이돌은 돔의 균형을 잡아주고 기단을 지탱하면서 지렛대의 역할로 기단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죠.

또한, 주먹돌이 기단을 안쪽으로 밀려가지 못하게 하여 기단이 무너지지 않게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있어요. 천장 덮개돌은 손잡이 없는 찻잔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으로 무게가 자그마치 20톤이나 되지만 돔형으로 시공했기 때문에 역학적 균형을 이루어 매우 튼튼하고 안정된 구조예요.



석굴암


그리고 우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석굴암은 어떻게 장마철의 습기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예요. 그것은 다름 아닌 열린 통풍 구조에 있다고 해요. 주실 지붕인 천장 덮개돌 위에는 직경 수십 cm의 돌들이 1m정도 쌓여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돌들이 얽혀 있으면 그 사이사이에 공기층을 함유하고 있어 외부 공기가 안팎으로 쉽게 드나들면서 열전달이 일어나게 돼요. 특히 장마가 그친 후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면 공기는 물기를 많이 함유해요.

석굴암 천장 덮개돌 위의 자갈들은 장마철 동안 비가 오면 차갑게 식어있어 날이 갠 후 물기가 많고 따뜻한 공기가 외부에서 들어오더라도 자갈들 사이를 통과 해오면서 수분이 응축되어 자갈에 묻게 되죠. 따라서 습기를 없애는 효과가 생겨 실내로는 건조한 공기만 들어오게 되고 밤이 되어 외부온도가 내려가면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상승해서 자갈들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돌에 묻어있던 물기를 빼앗아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석굴암 내부는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죠. 그러나 천년이란 세월동안 많은 습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견뎌온 석굴암이 일제시대 때 시멘트 보수공사로 인하여 결국 내부에 습기가 차고 물방울이 생기는 등 보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어요. 그 후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그 옛날의 신비스러움을 재현하려고 하였으나 지금의 첨단 과학기술로도 천 년 전의 조상들의 과학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었어요. 석굴암에 숨어있는 신비는 오늘날까지도 다 풀리지 않고 그 신비함을 간직한 채 후손들의 손에 운명을 맡기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에요.

친구들, 우리가 진정으로 조상들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려면 그분들의 깊은 지혜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관심을 좀 더 가져야 하겠어요. 조상들의 지혜를 알면 그만큼 현대의 과학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옛것을 알면 미래를 볼 수 있답니다.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이찬희

석굴암 본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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