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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 목록

조회 : 11207 | 2007-02-21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 활자본으로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이것은 그 동안 세계 최초라고 알려졌던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앞선 것이에요. 그러면 세계 최고의 인쇄술을 자랑했던 그 옛날 조상들의 과학기술의 세계로 다함께 들어가볼까요?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의 역사 속으로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라는 목판본 불경 인쇄물이 발견되었어요. 이 인쇄물은 신라에서 석가탑을 세운 751년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목판으로 찍어낸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물 이었어요. 중국에서는 868년에 만들어진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일본은 770년쯤에 인쇄된 ‘백만탑다라니’가 가장 오래 된 것이에요. 그렇다면 어째서 금속활자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길 수 있었던 것일까요?



목판 인쇄술은 삼국시대를 거쳐 더욱 발달하여 고려시대에는 인쇄판에 문자를 거꾸로 새겨 넣는 기술까지 개발하였어요. 이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이랍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에 침입한 몽고군을 몰아내기를 기원하면서 새긴 것인데 목판의 수도 많고 부피가 커서 보관하기가 어려웠어요. 또한 목판을 만드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한 종류의 책만 찍을 수 있는 등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죠. 그래서 새로 궁리해낸 것이 바로 금속 인쇄물이었어요. 이것은 글 전체를 판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한 벌씩 만들어 찍는 것이었어요.



팔만대장경


이렇게 한 벌의 활자를 만들어 놓으면 언제든지 쉽게 원하는 책을 찍어낼 수 있었죠. 이런 조상들의 노력의 결실로 태어난 것이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인 ‘상정고금예문’이랍니다. 상정고금예문은 현재까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시대의 이규보가 쓴 ‘신인상정예물 발미’라는 글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이렇게 뛰어난 금속 활자를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이는 우리 조상들의 과학 기술의 우수성과 수준을 말해주죠.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북방 민족과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송나라로부터 책 수입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책의 수요를 스스로 충당해야만 했기 때문에 목판인쇄보다 경비가 적게 드는 금속활자 인쇄가 발달하게 되었어요. 더욱이 고려는 목활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단단한 나무가 적은 반면 일찍부터 청동기술이 발달하고 있었죠. 그러면 금속활자에는 어떤 과학성이 들어있을까요?



금속활자





금속활자의 과학 속으로


금속활자는 책을 찍어낼 때에는 해당 활자들을 모아 판을 짠 뒤에 종이에 원하는 장수만큼 찍어내고 사용 후에는 분리하여 보관하죠. 그 다음 다른 장을 찍을 때 다시 여러 활자를 조합하여 찍어내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각 장마다 겹치는 글자도 일일이 새겨야 했던 목판인쇄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효율적이었어요. 게다가 활자 중에서도 금속활자는 목판활자나 진흙활자보다 마모가 잘 되지 않고 썩거나 모양이 변형될 걱정도 없어 보관을 장기간 할 수 있었으므로 그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죠.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복잡한 기술이 필요해요. 금속의 가장자리는 날카로워 종이가 쉽게 찢어지며, 먹은 매끈한 금속 표면에는 잘 스며들지 않아 글자를 찍어도 희미해서 알아보기가 어려웠죠.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금속활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당시까지 축적되어 온 지식과 기술력을 한데 모아야만 했어요.

조상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을 녹여 무기나 생활용품을 만들고 사용해 왔었죠. 그러한 금속 주조법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삼한통보, 해동중보, 해동통보와 같은 동전들도 만들 수 있었어요. 이렇게 동전을 주조하던 방식과 활자를 혼합하여 금속활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조상들은 금속을 이용할 때 그 쓰임새에 따라 서로 다른 금속 원소들을 다양한 비율로 조합해 사용했어요.




개성의 한 무덤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복(復)’ 활자의 금속 구성 성분은 구리 50.9, 아연 0.7, 주석 28.5, 납 10.2, 철 2.2%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금속 구성은 동전의 성분비와 비슷하답니다. ‘복’활자의 경우처럼 구리와 주석이 주로 들어간 합금을 놋쇠라고 하는데 이것은 활자의 구성 금속으로 안성맞춤 이었어요. 즉, 활자의 재료에 사용될 금속은 먹에 의한 손상이 없어야하고, 쉽게 녹고 더디게 굳어야 매끈한 글자 면을 얻을 수 있으며, 줄 등으로 쉽게 다듬을 수 있어야 했던 것이죠.

이 모든 것을 갖춘 것이 바로 놋쇠였어요. 또한, 금속 못지않게 중요했던 재료가 바로 종이였는데 종이는 옛날부터 유명했던 한지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죠. 마지막으로 활자가 묻혀 종이에 자국을 나타낼 수 있는 물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조상들은 매끈한 금속 표면에도 잘 묻어나는 오동나무 기름이나 삼나무 기름 등을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서 만든 유연묵을 개발하였답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모든 노력 하나하나가 모두 과학이요 우리의 고유한 전통입니다.



금속활자


2007년 1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은 1461년(세조 7년)에 간행된 ‘능엄경언해’와 1481년에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시집인 ‘두시언해’를 찍을 때 사용했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가 발견됐다고 발표를 했어요. 이렇게 우리의 우수했던 인쇄 기술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금 우리의 인쇄술이 우리보다 늦었던 서구의 인쇄술을 받아들인 것은 무엇 때문이며,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던 것일까요?

한글 금속활자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던 고려 시대에는 글자 자체가 뜻을 가지고 있어서 글자 수가 매우 방대 했어요. 활자는 겹치는 글자를 또 조각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기 위함인데 글자 수 자체가 방대하면 활자이든 목판이든 똑같이 수고스러운 것이죠. 또한, 조상들은 목판 인쇄가 예술적으로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금속활자 인쇄는 아무리 활자의 크기와 높이를 맞춘다고 하여도 약간 높낮이가 달라 종이에 찍었을 때 먹이 글자마다 고르게 묻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에 비해 목판 인쇄는 하나의 판에 조각을 하는 것이므로 굴곡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찍었을 때 더 선명하고 깨끗했으며 줄도 잘 맞았죠. 민간인이 판매 목적으로 간행한 책을 일컫는 방각본의 출판이 처음 시작된 것은 조선조 중기, 즉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고, 이마저 금속활자 인쇄가 아닌 목판인쇄로 이루어졌어요. 결국 우리는 개화기에 이르러서야 일본을 통해 근대적 활판 인쇄술을 받아들임으로써 민간의 금속활자 인쇄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인쇄술이 시작된 15세기 중엽부터 곧바로 민간인 중심의 상업적 출판을 활성화시켰고 그로 인해 독자 수와 출판량이 급격히 증가하였죠. 게다가 서양의 문자는 기본이 알파벳으로 A부터 Z까지 26자만 만들어 놓으면 더 이상 글자에 해당하는 활자를 조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런 특징의 문자를 가진 서양인들에게는 금속활자가 목판인쇄보다 탁월하게 높은 효율성을 가졌던 것이죠. 이러한 차이점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와 서양은 인쇄술의 발전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어요.





역사적, 그리고 시대적 배경 때문에 지금 우리의 인쇄술이 서양보다 뒤쳐졌지만 우리 조상들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계가 인정을 했어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과학 유물인 금속 활자. 이를 통하여 조상들의 의지와 인내와 지혜에 우리 모두 자부심 가져 봅시다.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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