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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동안 변하지 않는 과학, 한지 목록

조회 : 6699 | 2006-06-29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라는 목판본 불경이 한지에 찍혀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그 종이의 나이가 무려 1,300년을 넘긴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종이 기술로 만든 요즘의 책들도 50~100여년 정도의 세월에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면 한지의 우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구정광대대라니경


우리 민족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소중한 우리의 자랑인 한지, 그 속에는 어떤 과학적 비밀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다함께 들어갈 볼까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한지

종이의 기원에 대하여는 기원전 2세기경 식물성 섬유를 물에 풀어 발로 떠내는 원리를 알게 된 후 105년 중국의‘채륜’이라는 사람이 이를 개량하여 보급시켰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온 종이 만드는 기술을 독창적으로 개량하고 개발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인 한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삼국시대에 신라의 종이는 섬유질이 고르며 희고 질겼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높은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고급지가 제작되었고 한지의 우수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고려후기에는 종이 만드는 기술의 번성으로 인쇄기술까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종이의 명성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한지가 중국과의 외교에 필수품으로 여겨졌고 중국 역대 왕들의 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는 등 우리 조상의 한지 과학이야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리 고유의 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한지




조선시대에는 종이 만드는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용도별로 다양한 한지가 생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는 마지라 하여 삼베나 모시 같은 섬유질을 갈아서 만들었으며, 그 이후에 닥나무로 닥종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닥종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합니다. 이와 같이 한지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소중한 우리의 친구이자 자산이랍니다.

그러면 한지가 어떠한 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 받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닥나무와 닥나무 껍질


한지의 우수성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의 인피섬유는 길이가 보통 20~30㎜이상이며, 긴 것은 60~70㎜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 종이인 양지의 원료인 목재펄프의 섬유의 길이는 침엽수가 2.5~4.6㎜, 활엽수가 0.7~1.6㎜ 정도로 매우 짧습니다. 따라서 인피섬유는 목재펄프에 비해 섬유의 결합이 강하고 질기며, 조직의 강도가 뛰어나 훌륭한 종이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지가 천년의 세월을 지내 올 수 있었던 것은 화학반응을 쉽게 하지 않는 중성지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지나 교과서가 세월이 흐르면 누렇게 변색되는 이유는 사용된 펄프지가 산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양지는 PH 4.0 이하의 산성지로서 수명이 고작 50~100년 정도면 누렇게 황화현상을 일으키며 삭아버리는 데 비해, 한지는 PH 9.0 이상의 중성지로서 세월이 지날수록 결이 고와지고 수명이 오래가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지의 질을 향상시킨 또 다른 요인이 있는데, 바로 식물성 풀입니다.


한지섬유 양지섬유


식물성 풀과 도침 기술

한지는 섬유질을 균등하게 분산시키기 위해서 독특한 식물성 풀인 닥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닥풀은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하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 데 유리하고 겹쳐진 젖은 종이를 쉽게 떨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지의 질을 더 높인 조상들의 비법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한지 제조의 마무리 공정으로 종이 표면이 치밀해지고 광택이 나도록 하기 위해 풀칠한 종이를 여러 장씩 겹쳐 놓고 디딜방아 모양의 기구로 골고루 내리치는 작업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할머니들께서 무명옷에 쌀풀을 먹여 다듬이질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이 기술을‘도침’이라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이 세계 최초로 고안해 낸 종이의 표면 가공 기술입니다.

우리 민족의 삶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생활 속의 한지, 그 속에는 어떤 과학적 원리들이 숨어 있을까요? 생활 속에 사용된 한지의 과학성을 찾아 다함께 여행을 떠나 볼까요?




한지의 과학성을 찾아서


시골에 가면 방문에 창호지를 붙여놓고 방바닥에 한지장판을 깔고 한지로 벽을 발라놓은 집을 아직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문과 창문은 대부분이 유리로 되어있지만 옛날 선조들이 사용하던 문에는 유리 대신 창호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창호지는 유리문 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리문은 문을 열어야만 환기를 시킬 수 있지만 창호지는 눈으로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구멍이 있어 방문이나 창문에 발라두면 통풍이 잘 돼 문을 열지 않아도 환기가 잘되며, 습기를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습도까지 자연적으로 조절해 주는 매우 훌륭한‘천연의 공기 청정기’역할을 해왔습니다.


창호지문


또한, 겨울철에는 강한 찬바람을 막아 방안의 따뜻함을 잘 유지해 주고 햇빛을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적당히 조절해 주므로 따로 커튼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살아서 숨을 쉬는 창호지가 자연에 잘 순응하는 것은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한지장판은 비닐장판에 비해 잘 찢어지지 않고 환경 친화적이며, 열을 잘 전달시키면서도 열에 강하여 온돌 생활을 해온 우리 생활과 호흡을 같이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두껍게 만든 한지로 장판을 깔고 그 위에‘치자’로 색을 냈으며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문질러 종이가 피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치자는 다른 염료보다 물, 빛, 열에 의한 변색과 탈색정도가 작아 요즘 사용하고 있는 장판보다 기능이 우수하였던 것입니다.




한지는 이외에도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많은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예로 약탕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태어난 사람들 중 한약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한약을 먹는다는 것이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몸이 건강해서 될 수 있으면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제일 좋죠! 나 또한 어릴 적 어머니께서 옹기로 만든 약탕기로 정성껏 달여 주신 한약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약탕기


요즘 한약방에서 기계로 달이는 한약에서는 어릴 적 먹었던 한약 맛이 전혀 나질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어머니께서는 항상 한지로 약탕기의 뚜껑을 만들어 약을 달이셨던 것 같습니다.

한지로 약탕기의 뚜껑을 하면 다른 종이 뚜껑에 비해 흡수성과 통기성이 우수하며, 미세한 구멍이 많아 물방울이 맺히지 않고 수분 증발이 잘 됩니다. 그래서 약탕기 안의 약이 끓어도 넘치지를 않습니다. 또한, 탄성이 좋고 강도가 높아 수증기에 의해 잘 찢어지지도 않으며, 다른 종류의 뚜껑을 사용한 한약보다 변질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약의 당도가 높고 농축이 잘돼 약 효과가 더욱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약을 먹고 낫지 않을 병이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과학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닮은 강인한 생명력, 한지


한지는 우리 민족의 기상처럼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깨끗할 뿐만 아니라 은은한 정감과 소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질감과 빛깔이 고와서 책이나 화구용으로 조상들의 채취를 고스란히 담아 왔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우리민족과 호흡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우리의 종이인 한지, 이러한 한지가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지는군요.

가장 한국적인 한지가 곧 옛 명성을 회복하여 그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다시 한 번 떨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입니다. 옛것 안에 우리의 과학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이제 조금씩 느낄 수 있나요?..^.^

 

 

 



★경북대학교사범대학교부설고등학교 이찬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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