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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일우’를 확률로 계산하면 얼마? 목록

조회 : 1848 | 2017-02-01

억겁

 

‘억겁의 시간’, ‘천재일우의 기회’, ‘억만금의 재물’. 이런 말들은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억겁’, ‘천재일우’, ‘억만금’이 지닌 본래 뜻을 아는 사람은 있을까? ‘겁(劫)’이나 ‘재(載)’ 같은 말은 정확히 알기도 어렵지만 십중팔구는 ‘억만금’처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해하고 있기 십상이다.



누구나 어려서부터 단, 십, 백, 천, 만, 억, 조 등 숫자를 세는 단위수를 배운다. 그래서 예산이 90조원이라든가, 공사비가 3조원이라고 하면서 조 단위까지는 셈하는데 익숙하다. 그 보다 큰 수는 어떨까? 조선시대 세종대왕도 수학교재로 배웠다는 중국 송나라 주세걸의 ‘산학계몽’(算學啓蒙)이란 책을 살펴보자. 억(億), 조(兆), 경(京), 해(垓), 자(?), 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까지 어렴풋이 들어본 단위수가 나온다. 이런 수는 고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써오던 단위수에서 항하사, 나유타, 아승기 같은 인도 불교에서 온 수의 개념이 합쳐진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큰 수의 단위를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로 분류했다. 재는 중국에서 써오던 가장 큰 수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단, 십, 백, 천, 만(104), 십만, 백만, 천만, 억(108), 십억, 백억, 천억, 조(1012), 십조, 백조, 천조, 경(1016) 하는 식으로 세어나가면 억, 조, 경 등이 모두 10의 4제곱 단위로 올라가는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재는 10의 44제곱이나 되는 큰 수다.



그렇다면 ‘천재일우’(千載一遇)는 확률로 계산하면 얼마가 될까? 재는 10의 44제곱이라고 했으니 천재는 재에 천이 곱해진 10의 47제곱이 된다. 따라서 천재일우의 기회는 10의 47제곱분의 1의 확률로 얻는 기회다. 요즘으로 치면 로또복권의 당첨확률보다 훨씬 더 희박한, 세계적으로도 있기 어려운 기회가 된다.



‘억겁’은 어떤가? ‘겁’은 공식적인 단위수는 아니지만, 불교적인 의미를 갖는 시간 단위다. 불교에서 정의하는 겁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긴 시간이다. 달구지로 한나절 걸리는 거리(약 14km)를 한 변으로 하는 정육면체 모양의 바위를 선녀의 옷자락으로 1백년에 한번씩 스쳐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겁이 억 개나 있는 억겁은 상상조차 어려운 오랜 시간이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쓰인 단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은 10의 4제곱 단위로 숫자를 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옛날에는 단위수를 올리는 다른 방식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고대부터 일상생활에서 돈이나 곡물을 셀 때 써왔던 단위수로 단,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등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셈법이다.이 방법으로 셈하면 억은 105, 조는 106, 경은 107, 해는 108이 된다. 일반적으로 옛 문헌에서 생활과 관련돼 ‘억만금이나 되는 돈’이라고 하면 바로 이 단위수로 쓰인 말이다. 이방식이면 억만금은 10의 9제곱이므로 오늘날 개념으로 10억원이다.



옛날에 쓰인 단위수를 올리는 또 다른 방식은 천문학을 다룰 때 썼다. 큰 수를 ‘천문학적 숫자’라고 하듯이 천문학을 다룰 때는 위와 같은 10의 1제곱 단위법은 나타낼 수 있는 수가 너무 적어 불편하다. 그래서 큰 수를 일상으로 쓰는 단위인 만, 억, 조 등으로 나타내기 위해 10의 8제곱법이 사용됐다. 단,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108), 십억, 백억, 천억, 만억, 십만억, 백만억, 천만억, 조(1016), 십조, 백조, 천조, 만조, 십만조, 백만조, 천만조, 경(1024) 등으로 단위를 올린 것이다. 이 단위법을 쓰면 조가 10의 16제곱이 돼 천문학적인 큰 수라도 쉽게 나타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단위수를 매기는 방식은 동서양의 것이 혼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여기 돈이 42,700,080,000원 있다고 할 때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것을 금방 4백27억8만원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서양식 단위수를 올리는 방법이 우리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427,0008,0000이라고 적어보면 어떨까? 훨씬 쉽게 읽을 수 있다.



동양의 방식은 10의 4제곱 단위로 올라가나 서양식은 10의 3제곱 단위로 올라간다. 영어의 thousand(103), million(106), billion(109), trillion(1012)에서 그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아라비아 숫자에서 세 자리마다 찍은 콤마는 우리말에서는 이득을 볼 것이 없다. 차라리 네 자리마다 콤마를 찍어야 만, 억, 조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00년대에 살고 있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천년왕국인 ‘밀레니엄’은 10의 3제곱 단위를 쓰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만년왕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래도록 녹지 않는 히말라야의 눈을 만년설이라 하고, 멀고먼 미래를 ‘자손만대’라고 하듯이 우리는 만 단위에 의미를 부여해왔다. 서양에서 1천이라는 단위수는 무엇의 끝이거나 다시 시작하는 분절과 단절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만(萬)은 변하지 않는 영원을 상징한다.

 

글 : 서금영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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