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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가 썩은 과학자, 이휘소 목록

조회 : 1904 | 2017-01-11

이휘소박사

 

비운의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아는가? 1977년 교통사고로 4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이때까지 업적만으로 그는 물리학계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다. 또 대한민국에서 그를 모르는 젊은이는 드물다. 그야 말로 스타과학자인 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풍문에 따른 일반인의 인식은 이휘소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우리나라 핵무기 개발에 앞장선 용감한 과학자이자 애국자이며, 그의 죽음은 미국 정보기관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휘소 박사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고려대 물리학과 강주상 명예교수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핵무기에 개발에 대한 이론은 1970년대 미국 대학생의 졸업논문에 핵폭탄 설계도가 실릴 정도로 공개된 정보였다. 다시 말해 핵무기의 설계는 학부과정의 학생도 손쉽게 그릴 수 있었다. 만약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면 원료가 되는 ‘농축우라늄’ 확보가 관건인데 이는 이휘소 박사 전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휘소 박사의 죽음에 미국의 정보기관이 관련됐다’는 식의 음모론은 그의 학문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지난 4월 이휘소 박사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했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가 연구했던 주제나 연구내용을 아는 이는 드물다.



혹시 이런 동요를 아는가? “바윗돌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조약돌, 조약돌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이휘소 박사의 전공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게 쪼개진 알갱이, 즉 소립자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공부하는 ‘고에너지 소립자물리학’이다.



이휘소 박사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게이지 이론’

의 재규격화다. 1972년 미시세계의 현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기초이론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낸 것이다. 이로 인해 미시세계의 현상을 의미있는 이론값으로 계산할 수 있었고 실험적으로 확인이 가능해졌다. 



둘째는 ‘참’(Charm)입자주1의 탐색이다. 1970년대 K-중간자의 희귀붕괴 과정에서 새로운 참 쿼크가 예견됐는데, 이휘소 박사는 참 쿼크의 탐색방도를 여러 방면에서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1974년 11월 실제로 새로운 입자의 존재가 발견됐다. 이로 인해 이휘소 박사는 단순히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에서 더 유명한 ‘현상론 물리학자’가 됐다.



이러한 업적 때문에 강주상 교수는 이휘소 박사가 생존했다면 1999년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은 최대 3명까지, 2개 분야 이내에서 시상하는 제한조건이 있고 한번 수상한 주제는 다시 시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이 조건으로 볼 때 이휘소 박사는 참 입자 분야보다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로 노벨상을 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976년 팅과 리히터는 참 입자의 질량을 계산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참 입자를 제안한 글래쇼, 일리오폴로스, 마이아니와 참 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예견한 이휘소는 이 분야의 이론적인 토대를 세운 사람이다. 만약 이휘소 박사가 노벨상을 받으려면 애초 참 입자를 제안한 글래쇼와 일리오폴로스, 마이아니까지 적용돼야 하기 때문에 최대 3명이란 수상규정에 제한받게 된다.



그러나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로는 노벨상 수상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강주상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게이지 이론 연구를 수행했던 벨트만과 토프트는 1999년에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 이론의 논리체계를 확실히 한 이휘소 박사가 생존했다면 1999년 수상자 대열에 포함되어야 마땅했다는 얘기다. 소설 <핵물리학자 이휘소>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주장한 것처럼 사망 즈음에 노벨상 수상을 목전에 뒀던 것은 아니다.



물리학자가 아닌 인간 이휘소 박사의 모습은 평소 어떠했을까? 이휘소 박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물리학에만 매달린 사람’, ‘가정에 충실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이휘소 박사의 동료들은 그를 ‘팬티가 썩은 사람’으로 불렀다고 한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를 떼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는 생활습관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한번은 이휘소 박사가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연구실로 들어가더니, 이틀 만에 앉은 자리에서 한편의 논문을 완성했다고 한다. 실로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또 이휘소 박사의 좌우명은 “남이 아는 것은 나도 알아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도 몰라야 한다”였다. 그것은 단순히 남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남이 알아낸 것을 뒤쫓아 가는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물리학의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선도적인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휘소 박사의 노벨상 수상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이휘소 박사가 활약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없이 많은 한국 과학자가 세계적인 업적을 잇달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해 이휘소 박사가 “허허~”하고 웃게 될 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올 것이다.

 

글 : 서금영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 과학향기



주1) 1964년 물리학자 겔만과 츠바이히는 입자의 분수하전량이 1/3이나 2/3를 갖는 소재를 가정하고 ‘쿼크’라고 명명했다. 1974년 미국 스탠퍼드대 선형가속기센터(SLAC)의 리히터와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팅이 참 입자를 동시에 발견했다. 참 입자는 2세대 쿼크로 +(2/3)e의 전하량을 갖는다. 질량은 양성자보다 약간 더 무거운 1.3GeV정도다. 처음 발견 당시 BNL 연구진은 J입자로, SLAC 연구진은 ψ입자라 지었다가 J/ψ으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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