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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감염’ 바이러스는 착한 바이러스다! 목록

조회 : 1095 | 2017-01-04

바이러스
 
얼핏 생각하기에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식중독이다. 보통 덥고 습한 여름에 상한 음식을 먹고 걸리는 게 식중독인데, 겨울 식중독은 굴이나 조개와 같은 어패류에 있는 노로바이러스가 주원인이다. 그런데 이런 겨울 식중독의 대명사인 노로바이러스가 숙주, 그러니까 감염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 무균 쥐에 노로바이러스 투입했더니 면역력 ‘쑥’
 
2014년 11월 19일 학술지 ‘네이처’에 이목을 끄는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장내 바이러스는 공생 박테리아의 유익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제목이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이러스가 장내세균처럼 우리 몸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장내세균은 장 속에 살면서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높여주고 염증반응을 완화시켜주거나 유익한 물질을 분비한다. 그런데 질병을 일으키는 줄만 알았던 바이러스가 이처럼 좋은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 뉴욕대 의대 켄 캐드웰 교수팀이 주도했다. 연구팀은 멸균된 환경에서 실험쥐를 사육해 ‘무균 쥐’를 만들었다. 무균 쥐는 특정 면역세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작은창자의 융모가 비정상적으로 얇다. 그래서 몸도 삐쩍 마르고 질병에 취약하다.
 
연구팀은 이 무균 쥐에게 ‘쥐 노로바이러스’를 투여했다. 쥐 노로바이러스에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는 종류와, 증상 없이 감염 상태를 지속하는 종류가 있다. 연구팀이 투여한 건 두 번째 종류였다. 그 결과, 쥐의 융모가 정상 수준으로 두꺼워지고 면역세포 수치가 다시 올라갔다. 위장관 손상도 회복됐다. 또, 설사나 위장관 손상을 일으키는 다른 병원균에 쥐를 감염시킨 뒤 다시 노로바이러스를 투여하자 증상이 완화됐다.
 
연구팀은 “쥐 노로바이러스가 인터페론-1이라는 물질과 관련된 면역반응을 촉진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인터페론-1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면역계의 명령을 받아 바이러스에 대응하려고 만들어내는 단백질이다. 세포가 인터페론-1을 생성해 세포 밖으로 뿌리면, 주변 세포가 이를 받아 기존의 물질대사를 멈춘다. 바이러스가 굶어 죽도록 세포를 파업시키는 셈이다. 이 때 세포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물질대사를 잠깐 멈춰도 바이러스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인터페론-1이 하는 역할이 더 있다. 바로 면역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즉, 무균 쥐에 투여한 바이러스가 인터페론-1의 생성을 촉진했고, 그 결과 면역력까지 튼튼해진 것이다.
 
■ 바이러스와 숙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실 이 같은 연구가 처음은 아니다. 타액 속 바이러스가 해로운 세균을 물리친다는 연구도 있다. 기생벌은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는데, 기생벌이 옮기는 바이러스가 벌의 알을 보호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숙주의 몸에 숨어 조용히 살거나 심지어 도움을 주는 바이러스를 ‘지속감염’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바이러스의 ‘감염’에는 크게 급성감염과 지속감염이 있다. 급성감염 바이러스에 당하면 바로 질병에 걸린다. 세포에 침투해 빠르게 증식하고 빠져 나가면서 세포를 망가뜨린다. 숙주의 면역시스템에 바이러스가 당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피 터지게 맞붙는 ‘전쟁’이다. RNA 바이러스(유전정보를 DNA가 아닌 RNA 형태로 갖고 있는 바이러스. 중심 구조인 당이 리보오스이면 RNA, 디옥시리보오스라면 DNA가 된다)는 대부분 전쟁을 좋아한다. 2014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반면 지속감염은 휴전 상태다. 바이러스가 늘어나는 개체 수를 최대한 줄여 숙주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않고 감염 상태를 유지한다. 사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으면 바로 죽기 때문에 숙주를 살려 놓는 게 유리하다. DNA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휴전을 좋아한다.
 
이런 바이러스 일부는 숙주의 진화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속하는 레트로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인간 DNA의 약 8%는 레트로바이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몸에 남은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그냥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때론 쓸모 있는 단백질을 만들어냈고 인간의 진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
 
이처럼 바이러스가 숙주에게 도움을 주는 상태는 바이러스의 증식과 숙주의 면역반응이 적정 수준을 매우 섬세하게 유지하는 경우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그러나 바이러스가 숙주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건 아니”라며 “서로 협상하고 진화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RNA 바이러스, 전쟁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네?
 
최근에는 전쟁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RNA 바이러스 중에도 휴전 상태, 즉 지속감염을 하는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쥐 노로바이러스도 지속감염을 좋아하는 RNA 바이러스다.
 
사실 인류는 바이러스를 잘 모른다. 겨우 100여 년 전에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했다. 질병을 일으키는 급성감염 바이러스를 주로 연구하다 보니 ‘바이러스=물리쳐야 할 나쁜 놈’이라는 인식이 생겼을 뿐이다. 정 교수는 “지구에는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아직 제대로 모르고, 바이러스 세계가 얼마나 넓을지조차 추정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본 연구 결과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우아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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