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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방탄조끼 조선군의 ‘면제배갑’ 목록

조회 : 4445 | 2016-11-02

                                                                                                                                      과학향기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187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측과 전통을 고수하는 측과의 정치?군사적 충돌이 주된 줄거리다. 총탄에 뚫린 갑옷을 입고 쓰러지는 당대 최고의 사무라이 카추모토는 패퇴하는 전통세력을 은유한다. 사무라이는 근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최고의 전사였지만 근대화의 상징인 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건 영화의 배경과 비슷한 시대의 조선군은 이미 방탄조끼를 지급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근대화가 상당부분 진척돼 있던 일본은 물론 서양 제국도 생각지 못한 세계최초의 ‘개인 총탄보호구’였다. 실전에서도 성능을 입증한 조선군의 방탄조끼에 관해 차근차근 살펴보자.

 

방탄조끼는 말 그대로 총탄을 막기 위해 상체에 두르는 방어무기다. 인체 주요기관이 상체에 위치한 까닭에 방탄조끼는 병사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럼에도 현대전에서 방탄조끼가 보급된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공격무기와 방어무기가 짧은 시간차를 두며 대칭을 이루는 군사 과학기술의 역사적 특성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베트남전에서도 총탄을 막기 위한 방탄조끼는 병사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방탄조끼는 총탄이 아닌 포탄 파편을 막는 장비였을 뿐이다.



총탄 방어를 위한 방탄조끼가 쓰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전장에서의 인명 피해 상당수가 포탄 파편에 의해 발생한 탓이기도 했지만 총탄의 압도적 위력을 막아낼 기술적 수단이 부족했던 게 더 큰 이유였다. 수십 kg의 금속성 장갑을 병사의 몸에 덧대면 총탄을 막을 수는 있었겠지만 재빠른 동작을 기본으로 하는 전장에서 이는 무의미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병사의 방어수준은 결과적으로 수백 년 전 기사보다 더 후퇴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 직후 우수한 방호 능력을 지니면서도 무게가 가벼운 방탄조끼가 등장했다. 최근에야 개발된 줄 알았던 군사 과학기술의 결정체가 100년도 더 된 우리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군이 방탄조끼를 개발한 건 병인양요 뒤 서양 총의 우수한 성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서양 총에 위축된 병사들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봤던 흥선대원군은 방탄조끼 개발을 직접 지시했다. 논산시 군사·문화 박물관 설명 보기



‘면제배갑’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선군의 방탄조끼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면제배갑은 면 헝겊 13겹을 겹쳐 단단히 꿰맨 것이었다. 여러겹의 면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차례차례 흡수해 병사를 보호하도록 했다. 면제배갑은 1871년 미국이 자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침몰을 계기로 일으킨 신미양요 때 본격적으로 성능을 입증한다. 면제배갑을 착용한 당시 조선군은 실제로 미국 군대가 퍼부은 총탄에서 보호 받았다. 총탄으로부터의 방호라는 목적이 정확히 달성된 셈이었다.



놀라운 점은 조선군 방탄조끼의 원리가 아라미드 섬유를 통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는 현대의 최신 방탄조끼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1935년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아라미드는 고분자 아미드기(CO-NH)가 2개의 방향족 고리에 직접 결합한 섬유다. 아라미드 고분자가 나란히 정렬해 서로 강력하게 결속돼 있다는 얘기다. 그 결합 정도가 총탄의 운동 에너지도 흡수할 만큼 강력하다. 당시 조선군은 면 헝겊을 겹쳐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면제배갑에는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우선 입고 있으면 너무 더웠다. 메리야스 13겹을 겹쳐 입었다고 상상해보자. 한여름에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이를 입고 달려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신미양요가 6월에 일어났던 탓에 조선군은 더위라는 적과도 싸워야 했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강을 건너면 면제배갑이 물을 한껏 흡수해 이를 입은 병사의 기동력을 떨어뜨렸던 것도 문제였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면제배갑이 불에 극히 취약했다는 것이다. 면 소재가 지닐 수밖에 없던 약점이었다. 실제로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대가 대포 공격을 하자 그 파편 때문에 면제배갑을 입은 병사들의 몸에 연이어 불이 붙었다. 이처럼 조선군은 총탄을 막기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 같은 문제점에도 면제배갑이 미국 군대에 남긴 충격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총탄 세례 속에서 내달리는 조선군은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현재 면제배갑 중 유일하게 남은 한 벌이 미국의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당시 미국 군대가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짐작케 하고 있다.



고대 철학자 에라스무스는 ‘전쟁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유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적 대의가 아무리 크더라도 생명의 소멸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전쟁은 분명 회피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방탄조끼라 하더라도 생명을 100% 지키는 보증 수표는 못 된다. 때문에 전장에 나서는 군인들은 항상 죽음의 공포에 떨게 된다. 우리가 결국 만들어야 할 건 성능 좋은 방탄조끼가 아니라 날아올 총탄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글 : 이정호 과학전문 기자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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