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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건 무조건 먹어봐야 해! 화학자 쉘레 목록

조회 : 4461 | 2016-10-19

                                                                                                                                      쉘레

 

‘산소’라는 제목의 연극이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맞아 1901년 이전에 공을 세운 과학자에게 ‘제1회 거꾸로 노벨상’을 수여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를 찾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과학자가 쉘레, 프리스틀리, 라부아지에다.



만약 ①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산소를 처음 발견한 사람, ②산소 발견을 논문으로 쓴 사람, ③산소가 새로운 원소임을 알아낸 사람 중 한명에게 노벨상을 줘야 한다면 누가 좋을까? 연극은 이 세 사람 모두에게 상을 주는 걸로 결론난다. 이 중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산소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쉘레다. 언급된 세 명 중에서 가장 낯선 이름일 것이다. 사실 쉘레는 그 업적에 비해 저평가된 불운한 과학자다.



쉘레(Karl Wilhelm Scheele)는 1742년 12월 9일 독일 스트라르즌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 지방은 스웨덴령이었기 때문에 쉘레는 독일인이면서 스웨덴 국적이다. 어린시절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시작한 약재상 일이 쉘레를 화학 분야로 이끌었다.



당시 약재상은 광석에서 추출한 성분을 약으로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쉘레는 화학에 대한 실제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쉘레를 맘에 들어 한 약재상 주인은 쉘레에게 화학책을 사주기도 하고, 실험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쉘레가 실험의 대가로 불리게 된 이유는 바로 약재상에서 보낸 10년 덕분이었다.



나이 27살 때 대학도시로 유명한 웁살라로 이주하면서 광물학자 베리만의 도움을 받은 쉘레는 연구 업적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가 남긴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이 28~31살에 이뤄졌다. 그는 4년 동안 동시대 어떤 화학자보다 더 많은 원소와 물질을 발견했다.



쉘레의 업적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기체분야 연구다. 그는 공기에는 연소를 유지시키는 성분과 그렇지 않는 두 가지 성분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리병 안에서 연소 실험을 한 결과 처음 기체의 1/5이 없어지고 4/5가 남은 것을 보고 1/5에 해당하는 공기가 연소를 유지시키는 기체라고 봤다.



1772년 그는 최초로 산소를 발견한다. 진한 황산에 이산화망간이 포함된 광석가루를 섞어 용기에 넣고 가열해서 새로운 기체를 만든 것이다. 이 기체를 다른 유리병에 모은 뒤 불을 붙인 초를 넣었더니 초가 눈부시게 타올랐다. 그는 이 기체에 ‘불의 공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초로 산소가 발견된 순간이었다.



쉘레는 자신의 연구 내용을 ‘공기와 불에 대한 화학 논문’이란 제목으로 출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쉘레의 논문을 맡은 출판사가 출간을 4년이나 미루는 바람에 다른 사람에게 산소 발견의 공이 넘어갔다. 쉘레가 산소를 발견한 지 2년 뒤 영국의 프리스틀리가 다른 방법으로 산소를 얻어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쉘레는 프리스틀리가 표절했다고 주장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다행스럽게 오늘날에는 쉘레와 프리스틀리를 산소의 공동발견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염소, 질소, 망간, 바륨 등 수많은 원소를 발견하고 연구했지만 늘 프리스틀리를 비롯한 다른 화학자에게 간발의 차이로 선수를 빼앗겨 빛을 보지 못했다. 실제 그는 염소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원소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산소의 화합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체 이외 다른 분야의 업적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염화은의 감광성을 실험해 염화은이 보라색 빛에 가장 빨리 검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기화학 분야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겨 식물 열매 용액에 석탄수, 질산납을 가해 침전물을 만들고 이를 분해해 주석산, 구연산, 사과산 등의 유기산을 분리해냈다. 또 그는 요결석을 연구해 요산을 발견하기도 했다. 쉘레의 연구 분야는 당대 어떤 화학자도 필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범위였다. 오늘날 화학 교과서에 실린 많은 실험이 쉘레에 의해 처음 실행됐다.



쉘레는 한 가지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제조한 화학물질을 반드시 맛을 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일반 약품은 물론이고 비산, 염화제이수은, 청산 같은 독극물까지도 맛봤다고 한다. 이것이 화근이 돼 쉘레는 1786년 43살의 젊은 나이에 수은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쉘레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이론에 약했다. 정작 중요한 발견을 하고도 그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공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는 열정은 이론의 약함을 보완하기에 충분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높은 지위도 없이 오직 일평생 실험에만 매달렸다. 190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발드는 쉘레에 대해 “실험실에서의 일만이 그의 정신 전체를 지배했고 다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평했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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