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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N 같은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꿈꾸다 목록

조회 : 1621 | 2016-06-29

CERN 같은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꿈꾸다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는 댄 브라운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반물질(antimatter)뿐만 아니라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입자까지 입자 물리학의 최첨단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 CERN은 인류 최초로 반물질을 생산해 낸 곳이자 ‘빅뱅을 만들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연구소’로 묘사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 연구소 중 하나인 CERN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월드 와이드 웹(www)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



CERN의 탄생 배경은 1, 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대전을 거친 유럽은 더 이상 과학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부터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 핵폭탄의 창조자라 불리는 엔리코 페르미까지, 당대를 호령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물리학은 당시 인류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한에너지의 가능성과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공포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그래서 핵물리학자들은 과학계를 넘어 사회 전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됐다. 당시 유럽은 미국으로 유출된 두뇌들을 다시 데려오기 위한 고민에 빠졌고 과학의 중심지를 되찾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CERN을 만들자는 최초의 제안은 1949년에 나왔다. 노벨상 수상자인 드브로이가 ‘유럽 공동의 연구소’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뒤이어 1950년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이시도로 라비가 국제사회의 지원을 강조하며 힘을 실었다. 이듬해인 1951년, ‘핵 연구를 위한 유럽 이사회’를 만들자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11개국의 서명과 함께 CERN이 탄생했다. 그 후 1954년 CERN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역사적인 첫 삽을 떴고 현재 21개의 회원국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공동연구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CERN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인 LHC(Large Hadron Collider)가 있다. 둘레가 무려 27km나 되는 이 거대한 LHC를 왜 만들었을까? 궁극적인 대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힉스입자를 발견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새로운 물리학을 찾기 위해서다.



누구나 한 번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이다. 과학은 표준모형으로 답한다. 표준모형은 힉스입자를 포함해 17개의 입자들로 만물이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1995년 탑쿼크가 발견되면서 16개의 입자들이 모두 발견됐지만 세기를 넘겨도 발견되지 않았던 유일한 입자가 바로 힉스입자였다. 이 입자를 찾기 위해서 미국은 테바트론(Tevatron)을 건설하고, 유럽은 LHC를 건설했던 것이다.



힉스입자를 찾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만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LHC에서 충돌실험을 통해 만든 힉스입자는 순식간에 붕괴돼서 사라지고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진다. 이때 흩어지고 산산조각 난 입자들을 카메라에 찍어 담아내는 것이 바로 ‘검출기’다. 광속도로 쏟아지는 수많은 입자들을 모두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ATLAS’, ‘CMS’, ‘ALICE’와 같은 검출기다. 검출기를 작동시키고 거기에서 나오는 신호를 처리해 자료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과학자들이 5000명이 넘는다.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 이 순간 스위스 제네바 CERN의 한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LHC 안에는 입자빔들이 광속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빔은 양성자들의 뭉치로 1초에 4천만 번이나 충돌한다. 이 수많은 충돌 사건의 일부만을 검출기에서 기록해도 1년 동안 생산되는 데이터의 양이 10페타바이트(PB, 테라바이트의 1000배)에 달한다.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CERN은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그리드컴퓨팅(grid computing)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드컴퓨팅은 지리적으로 분산된 컴퓨터 자원을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기서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하고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CERN이 그리드컴퓨팅의 중심인 ‘Tier-0(제0계층)’이 되고, LHC실험에 참여하는 나라의 국가 슈퍼컴퓨팅센터를 ‘Tier-1(제1계층)’이라 부른다. 그리고 각국의 국공립 연구소나 큰 규모의 대학들이 운영하는 컴퓨터 센터들이 ‘Tier-2(제2계층)’가 된다. 이런 식으로 계층화된 컴퓨터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드컴퓨팅이 가능한 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고속네트워크 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고속네트워크 망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하드디스크를 들고 각 나라와 대학으로 데이터를 들고 다녔거나, 모두 스위스에 모여 연구를 해야 했을 것이다. 요컨대, 힉스입자의 발견은 앞에서 이야기한 4가지 기술, 즉 가속기, 검출기, 컴퓨팅, 네트워크가 모두 뭉쳐 만들어 낸 작품이란 것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CERN과 협약을 맺고 CMS 실험과 ALICE 실험에 참여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금세기 들어 일본이 순수 과학분야에서 연거푸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순수과학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돼 가고 있고, 우리 정부도 더 이상 간과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이다. 우리나라 물리학자들도 LHC 실험뿐 아니라 다른 고에너지물리실험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뛰어난 이론물리학자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

가속기 건설도 국가 주요 의제로 끊임없이 검토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검출기 개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기술을 축적해오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를 한 바퀴 크게 도는 고속네트워크인 글로리아드(GLORIAD)도 가지고 있다. KISTI는 LHC 그리드컴퓨팅에 참여해 Tier-1센터를 운영하며 국제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KISTI가 제공하는 과학기술연구망(KREONET)은 국내의 연구소들과 대학들을 고속네트워크로 묶어 CERN과의 국제공동연구를 가능케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나라는 가속기, 검출기, 컴퓨터, 네트워크까지 CERN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과 인프라를 다 가지고 있다. 현재 구슬은 다 가지고는 있지만 모두 흩어져 있는 셈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흩어진 두뇌와 자원을 한곳에 집중해 성공을 거둔 CERN처럼 비록 60년이나 늦었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꿈꾸는 이유다.



글 : 박인규 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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