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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 건설된 ‘미생물 공장’ 목록

조회 : 2030 | 2016-06-22

웹에 건설된 ‘미생물 공장’

 

화장품 회사의 연구원인 한 박사는 실험실에 들어서자 컴퓨터의 전원부터 켰다. 새로 개발한 화장품에 포함된 상피세포성장인자(Epidermal Growth Factor, EGF)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EGF는 피부를 이루는 상피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단백질로 주름을 펴거나 피부노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어머! 세포에 침투한 화장품이 단백질의 고리를 끊어 효소반응을 방해하고 있었네?”



그러나 실험실 어디를 봐도 세포를 키우는 접시나 시험관, 화장품 샘플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 박사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한 박사가 키우고 있는 피부세포는 실제가 아니라 컴퓨터에 ‘사는’ 세포다. 생명과학자가 실험대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실험할 수 있게 된 까닭은 뭘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미생물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데 꼬박 1년이 걸렸지만 유전자 분석기술이 발달로 이제는 불과 며칠 만에 유전자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유전자 지도뿐 아니다. 다양한 생물학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생명정보의 홍수시대가 됐다. 이런 정보와 첨단 가상실험 기술을 이용해 복잡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가상세포’를 탄생시켰다.



먼저 수많은 과학자들이 낸 실험 결과를 모으고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 정보의 정확도와 가치가 모두 다르므로 이에 따라 가중치를 둬야 한다. 수많은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정보, 유전자-유전자의 관계, 유전자-단백질 관계, 단백질-단백질 관계 같은 정보가 포함된다. 이런 정보들의 상호관계를 조합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든 시뮬레이터가 바로 ‘가상세포’다.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가 더해질수록 가상세포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은 실제 세포의 생명현상을 닮게 된다.



일본 게이오대가 개발한 ‘E-세포’가 가장 대표적인 가상세포다. E-세포는 mRNA 전사, 단백질 해독, 에너지 생성, 인지질 합성 같이 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을 가상세포로 구현했다. 궁극적으로 세포 전체를 하나의 시뮬레이션으로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코네티컷대가 개발한 ‘버추얼 세포’도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버추얼 세포로 신경세포 내에서 칼슘이온이 어떻게 이동하며 신호를 전달하는지 관찰하고 있다.



우리나라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팀도 다양한 신종미생물의 가상세포를 만들어 대사공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생물은 살아가면서 여러 물질을 만드는데 이중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도 있다. 미생물의 대사특성을 바꿔 미생물로 하여금 인간이 원하는 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하는 기술을 대사공학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대사공학은 우연히 만들어진 돌연변이 미생물을 찾아 증식시키는 방법을 썼다.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유전자가 변형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내기 위해 추가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가상세포를 만들면 이런 수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 4월 이 교수팀은 대장균의 가상세포인 ‘MBEL979’을 사용해서 ‘발린’을 만드는 미생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발린은 사람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 9가지 중 하나로 몸에서 직접 만들지 못해 음식이나 약을 통해서만 섭취해야 한다.



연구팀은 대장균 게놈에서 필요한 부위만을 선택적으로 조작해 초기 생산 균주를 제작하고, DNA칩으로 특정 아미노산을 만드는 mRNA를 분석해 새롭게 조작할 1차 타깃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그 다음 ‘MBEL979’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더하거나 없애는 작업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해 2차 타깃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전통적인 방법대로라면 2차 타깃 유전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동일한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데 ‘MBEL979’은 시간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찾아낸 2차 타깃 유전자들을 실제 균주 개발에 적용하자 세포에 포도당 100g을 넣어주면 발린 37.8g을 만드는 미생물이 탄생했다. 연구팀은 발린을 생산하는 균주와 제조방법에 대해 국제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공상소설이나 만화에서 가능했던 ‘웹에 건설된 생물공장’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가상세포로 까다로운 임상실험의 수고를 덜 수도 있다. 2004년 스위스 제약회사 호프먼 라로슈는 고혈압 치료제 미베프라딜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시판을 요청했다. FDA는 이 약에 대해 1000명의 임상실험을 요구했다. 호프먼 라로슈는 100명에게만 실제 임상실험을 실시하고, 나머지 900명 분의 임상실험은 가상세포를 확장한 ‘가상심장’으로 실험해 안정성을 검증받았다. 가상세포를 이용한 실험이 실제 세포로 행한 실험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우리나라도 2003년부터 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시스템생물학 국책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국내의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생명공학의 성과와 융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다. 가상세포 기술이 실제 세포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을 대신해 실험 받는 동물들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다. 아직은 가상세포가 고통을 느낀다거나 죽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지만 인간을 위해 고통 받을 ‘제3의 생명체’ 가상세포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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