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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와 자석의 성질을 동시에! 금속산화물 목록

조회 : 2432 | 2016-05-25

전지와 자석의 성질을 동시에! 금속산화물

 

요즘 전자기기 중에 반도체 메모리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이 있을까. 복잡한 컴퓨터는 물론이고 냉장고, 전기밥솥과 같은 일반 가전제품에도 메모리가 들어있다. 메모리는 이미 우리 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가장 많이 쓰이는 메모리는 D램과 플래시메모리다. 컴퓨터의 주 메모리로 많이 쓰는 D램은 ‘기억상실증’이 있어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 정보를 다시 저장해줘야 하지만 구조가 단순해 고용량으로 집적하기 쉽다. 반면 플래시메모리는 속도가 느리지만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잃지 않아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에 널리 쓰인다.



과학자들은 플래시메모리와 D램의 장점을 합친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 재료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재료가 필요하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금속산화물. 서울대 노태원 교수가 이끄는 산화물전자공학연구단은 금속산화물 연구를 통해 한계에 다다른 메모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금속산화물이란 말 그대로 금속에 산소가 붙은 것이다. 흔히 ‘녹이 슨다’는 말은 철이 산화될 때 쓰인다. 금속에 산소가 붙으면 녹이 슬어 오래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속 자체와는 다른 특이한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신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노 교수는 “금속산화물은 물리학에서 가장 덜 알려진 분야”라며 “해결해야 할 난제도 많다”라고 강조한다.



금속산화물 연구가 처음 빛을 발한 분야는 차세대 메모리 F램이다. F램은 산화물의 일종인 강유전체를 메모리소자로 사용한다. 강유전체란 전류를 흘리면 내부가 양극, 음극으로 갈라진 뒤 전류를 흘리지 않아도 이 상태를 유지하는 물질을 말한다. 마치 건전지가 양극과 음극으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강유전체가 전기를 띠고 있을 때를 1, 띠지 않을 때를 0으로 정하면 F램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강유전체의 성질 덕에 F램은 플래시메모리처럼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 또 구조가 단순해 D램처럼 집적하기 쉽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던 F램 연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F램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자 일정 회수 이상에서 메모리소자인 강유전체가 자신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노 교수 연구팀은 ‘강유전체의 피로현상’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해결할 지 막막했다.



연구단은 강유전체의 피로현상 원인을 산화와 환원에서 찾았다. 가끔 강유전체에서 산소가 떨어져나가는 현상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강유전체가 자신의 성질을 잃는다는 것. 연구단은 금속산화물의 한 종류인 ‘비스무스-티타늄 산화물’(BTO)로 이 가설을 증명했다.



더 나아가 연구단은 BTO에서 비스무스 이온 몇 개를 란타늄으로 치환해 피로현상을 없앤 ‘란타늄 도핑 비스무스-티타늄 산화물’(BLT)이 F램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F램의 난제가 풀린 것이다. 현재 BLT를 메모리 소자로 사용하는 F램을 하이닉스사가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강체’가 금속산화물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강체란 양극과 음극으로 갈라진 상태를 유지하는 강유전체의 성질과 N극과 S극으로 갈라진 상태를 유지하는 강자성체의 성질을 모두 가진 물질이다.



한 물체에서 강유전체와 강자성체의 성질이 함께 있으면 무엇이 좋을까. 다강체를 이용하면 전기로 저장하는 D램과 자기로 저장하는 하드디스크의 특성을 공유하는 메모리를 만들 수 있다. 전기로 1과 0을 기록하고, 동시에 자기로 1과 0을 기록하면 집적도는 2배 높아진다. 여기에 전기로 쓰고 자기로 읽거나 반대로 자기로 쓰고 전기로 읽는 식의 다양한 기능을 구현해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절대영도(-273℃)에 가까운 극저온에서만 다강체가 발견됐다는 점. 연구단은 원자의 결합 모양을 바꿔 이 문제를 풀고 있다. ‘테르븀-망간 산화물’(TbMnO3)에 레이저 광선을 쏴 크리스털 위에 조심스럽게 쌓아 올리면 원래 직육면체 모양의 테르븀-망간 산화물을 정육면체로 바꿀 수 있다. 모양이 바뀌면 성질도 바뀐다. 연구단은 모양이 바뀐 테르븀-망간 산화물이 -173℃ 이상의 온도에서도 다강체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강체 실용화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연구단은 금속산화물을 연구하기 위해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겹겹이 얇게 쌓는’ 방법을 쓴다. 쌓기 원하는 물질을 곱게 빻고 다시 단단하게 뭉쳐 시료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시료에 강력한 레이저 광선을 쏘면 시료 물질이 플라즈마 상태로 바뀐다. 각도를 잘 맞춰 플라즈마가 튀어나가는 방향에 크리스털 판을 놓으면 판 위로 산화물층이 얇게 쌓인다. 연구단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5nm 두께로 쌓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박막의 두께가 얇을수록 메모리 소자도 작게 만들 수 있어 집적도가 높아진다.



한계에 다다른 반도체 분야에 금속산화물 연구가 새로운 해결책을 던지고 있다. 금속산화물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묵은 난제들도 하나씩 풀리게 될 것이다. 반도체라는 신재료가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것처럼 신기한 성질을 가진 금속산화물이 등장해 또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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