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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랫동안 의학을 지배한 사람, 갈레노스 목록

조회 : 1868 | 2016-05-04

가장 오랫동안 의학을 지배한 사람, 갈레노스

 

고대 서양의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히포크라테스다. 그에 비해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199)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상징이라면, 갈레노스는 약 1300년 동안이나 서양의학을 실제로 지배했다.



현대 과학에서 어떤 연구결과의 가치를 평가할 때 해당 논문의 ‘피인용지수’를 본다. 다른 논문에서 많이 인용된 연구결과일수록 높은 가치를 갖는다는 뜻이다. 만약 피인용지수를 고대부터 적용한다면 단연 1등은 갈레노스다. 그것도 2등과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면서 말이다. 현대의학 시대가 열리기까지 대부분의 의학 분쟁이 ‘갈레노스의 말에 따르면…’으로 해결될 정도였다.



그리스 식민도시 페르가뭄에서 태어난 갈레노스는 청소년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에 입문했다. 그의 아버지의 꿈에서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가 갈레노스를 의사로 만들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에서 수행원으로 일한 갈레노스는 그 후 교육의 중심부인 스미르나, 코린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하며 의학을 공부했다.



갈레노스를 가르친 사람들은 당대의 주요 철학파,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의 스승들이었다. 다양한 학파에서 두루 배운 덕에 갈레노스는 어느 특정 학파에 종속되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그가 열린 마음으로 의학 지식을 쌓고 시연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유학에서 돌아온 갈레노스는 검투사 담당의를 하다가 로마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그는 해부학과 의학 강연을 하고 군중시연을 열었다. 또 철학자인 에우데모스의 황달을 치료하는 성과도 올렸다. 결국 그는 원로의원이던 보에티우스의 도움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궁으로 들어가게 됐다.



합리적인 의학을 위해서는 해부를 통해 인체 장기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그러나 갈레노스가 살았던 로마 제국 시대에는 법으로 인체의 해부를 금했다. 그는 인체를 해부하는 대신 영장류인 아프리카산 바바리 원숭이와 돼지를 주로 사용해 해부 지식을 쌓았다.



갈레노스는 실제 해부와 임상 실험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얻는 방법론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해부와 실험을 통해 여러 장기의 기능을 밝혔다. 근육과 뼈를 구분했고, 7쌍의 뇌신경을 구분했다. 심장을 해부해 심장판막을 묘사하고, 정맥과 동맥의 차이점도 관찰했다.



또 뇌가 목소리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되돌이후두신경을 묶는 실험을 했다. 근육의 조절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척수를 자르고, 소변이 방광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요관을 묶어 증명했다.



특히 그는 혈액이 혈관을 통해 신체 말단까지 퍼져나가며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물질을 운반한다고 믿었다. 혈액이 간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점과 혈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점은 흠이지만 갈레노스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한다면 실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갈레노스는 자신의 의학 이론을 대부분 해부와 실험으로 증명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러나 현대 의학과 비교할 때 갈레노스의 의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례로 갈레노스는 살무사의 머리, 염소 똥, 시체 조각을 넣고 끓인 ‘만병통치약’을 만들었는데 황당하게도 18세기까지도 매우 중요한 약으로 통용됐다. 그는 피를 뽑아 치료하는 사혈법(瀉血法)을 사용하기도 했다. 혈액에 영혼적인 요소가 있어 병든 사람의 피를 뽑아내면 병이 치료된다고 믿었다. 이는 당대 각 학파들이 설파하던 생명의 원리를 생각한다면 크게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인체를 직접 해부할 수 없다는 제약이 많은 오류를 가져왔다.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혈액에 영혼이 있다’는 이론은 중세시대 종교와 결합해 의학계를 지배하는 ‘교리’가 됐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갈레노스는 해부와 실험을 의학에 도입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에 악영향을 끼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갈레노스에 의해 만들어진 ‘교리’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16세기까지 유지되다가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살리우스가 ‘인체 조직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내놓으며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잘못된 이론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레노스가 행한 해부실험은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인류가 무지에서 합리와 논리의 단계로 나아갔던 개화의 도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학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갈레노스의 업적은 크다 하겠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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