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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먹으면 덥고, 박하 먹으면 시원한 이유 목록

조회 : 3766 | 2016-05-04

  • 고추 먹으면 덥고, 박하 먹으면 시원한 이유

     

    우리 몸은 열이 들어오면 덥다고 느끼고 열을 빼앗기면 춥다고 느끼며 불편해한다. 온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지거나 낮아질수록 비례해서 커지는 통증 감각은 온도 감각과 같은 것일까 별개일까? 왜 우리는 뜨겁지 않은 고추를 먹고 땀을 흘리고 열을 빼앗지 않는 박하사탕을 먹고 시원하다고 느낄까? 지난 수백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런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세포·분자약학과 데이비드 줄리우스 교수팀은 이런 여러 의문을 단숨에 해소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캅사이신 수용체 : 통증 경로에 있는, 열에 의해 활성화되는 이온 채널’이다. 제목을 유심히 보면 고추의 주성분인 캅사이신의 매운맛과 열, 통증이 하나의 센서를 통해 감지됨을 시사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연구팀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말단을 조사해 신경세포막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이온 채널 단백질이 통증을 느끼는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이온 채널 단백질은 TRPV1로 온도가 42℃가 넘거나 캅사이신이 달라붙으면 통로가 열리면서 세포 밖의 나트륨 이온(Na+)과 칼슘 이온(Ca2+)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 결과 신경세포 내부의 전위가 바뀌면서 전기신호가 척수를 거처 대뇌로 전달돼 통증과 열을 느끼게 된다.



    결국 고추를 먹으면 땀이 나는 것은 고추의 주성분인 캅사이신이 TRPV1을 자극해 열 신호를 대뇌에 전달함으로써 뇌가 열을 식히는 반응, 즉 땀이 나게 하기 때문이다. 뇌의 입장에서는 깜빡 속은 셈이지만 우리가 고추를 먹고 덥다고 느끼는 것만은 진실이다.



    생쥐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TRPV1과 비슷한 유전자가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조사하자 전부 네 가지 유전자가 온도센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TRPV1은 42℃ 이상일 때, TRPV2는 52℃ 이상일 때, TRPV3는 33℃ 이상일 때 채널이 열려 온도를 감지하고 TRPV4는 27~42℃에서 채널이 열린다. 결국 뇌는 온도에 따라 이들 채널이 열리고 닫히는 패턴을 종합해 더운 정도를 판단한다는 말이다.



    한편 캅사이신은 열센서 가운데 TRPV1에만 달라붙고 나머지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TRPV1이 없는 생쥐가 고추의 매운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열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는 실험결과를 잘 설명해준다. 그런데 이들 네 가지 센서는 차가움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이 냉(冷)센서를 찾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2002년 두 연구팀에서 거의 동시에 냉센서를 찾아냈다. 열수용체를 발견한 줄리우스 교수팀이 그 가운데 하나. 두 팀이 발견한 수용체는 같은 것으로 TRPM8이라고 명명됐다. 역시 채널 단백질인 TRPM8은 25℃ 이하에서 채널이 열리면서 신호를 전달하는데 온도가 낮아질수록 활성이 커진다. 흥미롭게도 박하의 주성분인 멘톨이 TRPM8에 붙으면 역시 채널이 열린다. 박하사탕을 먹거나 양치질을 하면 입안이 시원해지는 이유다.



    향이 없는 캅사이신과는 달리 휘발성 분자인 멘톨은 청량감 있는 향이 난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멘톨이 많이 들어있는 페퍼민트 같은 박하류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향료가 널리 쓰였다. 면도 후 바르는 스킨이나 치약의 향료에 멘톨은 빠질 수 없는 성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멘톨의 시원한 느낌을 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TRPM8이 발견됨으로써 진짜 온도 감각에 영향을 준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캅사이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처음엔 통증을 일으키지만 나중에는 진통 작용을 보인다. 캅사이신의 작용으로 수용체의 채널이 지속적으로 열리면 신경세포가 과도한 자극을 견디지 못해 죽기 때문에 결국 통증에 둔감해진다는 것. 이미 캅사이신을 주성분으로 한 진통 크림이 나와 있다.



    하지만 캅사이신으로 신경세포를 죽여 진통 효과를 보는 방법 보다 신경세포의 TRPV1이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서울대 약대 오우택 교수팀은 염증이 생기면 신경세포 안에서 HPETE라는 분자가 만들어져 TRPV1에 달라붙어 채널을 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HPETE와 구조가 비슷해 TRPV1에 달라붙지만 채널을 열지는 못하는 물질이 있다면 이를 진통제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오 교수팀을 비롯해 여러 연구팀이 이 물질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절대영도(-273.16℃)에서 별의 내부온도인 수억 도에 이르기까지 온도의 범위는 매우 넓지만 인체가 민감하게 느끼는 온도의 범위는 아주 좁다. 즉 28~34℃에서 적당하다고 느끼다가 15℃ 밑으로 내려가면 춥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반면 42℃가 넘어가면 뜨겁다며 역시 통증이 찾아온다. 결국 인간은 우주에서 관찰되는 수억도의 온도범위 가운데 불과 27도, 즉 15~42℃에서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존재인 셈이다.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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