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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입맛도 늙는다 목록

조회 : 1577 | 2015-12-23

 

나이 들면 입맛도 늙는다

 

“홍시입니다. 홍시 맛이 나옵니다.”


장금은 단맛이 나는 고기를 씹더니 대번 ‘홍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정 상궁은 방금 금영이 고기를 만들 때 ‘물엿을 썼다’라고 말해 흐뭇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대체 저 아이는 어찌 ‘홍시’를 운운한단 말인가. 혹시 장금이란 녀석이 자신의 관심을 끌려고 엉뚱한 답을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정 상궁은 무서운 얼굴로 이유를 물었다.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예? 저는… 제 입에서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장금은 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우물쭈물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다’니 정말 맛을 보고 대답한 게 확실했다. 놀란 정 상궁은 굳었던 표정을 풀며 크게 웃었다.



“호오~ 타고난 미각은 따로 있었구나! 그렇지, 홍시가 들어있어 홍시 맛이 난 걸 생각으로 알아내라 한 내가 어리석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절대미각을 인정받은 장금은 궁중 최고 요리사로 자리 잡았고, 40년 넘게 전설의 절대미각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최근 장금에게 고민이 생겼다. 새로 왕위에 오른 젊은 임금이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고 짜다, 시다 불평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체 임금의 입맛이 얼마나 까다롭기에 절대미각 장금의 손맛에 넘어오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장금은 한 상궁을 찾았다. 한 상궁은 장금이 등장하기 전 수라상을 책임진 사람이다. 장금이처럼 맛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 사신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마마님, 저는 어쩌면 좋아요. 새 임금님은 제가 만든 음식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입니다. 매번 수라를 받으실 때마다 짜다거나, 시다는 불만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다른 상궁은 다 맛있다고 하는데 임금님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울상을 짓는 장금을 보고 빙그레 웃음 짓는 한 상궁. 다짜고짜 장금에게 나이를 물었다. 장금은 10살 즈음 궁에 들어와 40년을 넘게 지냈으니, 50이 훌쩍 넘었다.



“그 나이가 됐으니 혀도 나이가 든 게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데 맛봉오리라고 멀쩡할 리가 있겠니?”


네? 혀도 나이를 먹는다고요? 마마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맛봉오리는 또 무엇인가요?”


“수라간을 나와서 서책을 좀 봤더니 맛에 대한 이야기도 있더구나. 거기서 본 건데 우리 혀에는 ‘미뢰(味?)’라고 부르는 맛봉오리가 있다고 해. 여기에는 맛을 느끼는 세포, 미각세포들이 있어서 맛을 느끼게 해준단다. 신맛과 쓴맛, 단맛, 짠맛을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이 세포들 덕분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 맛봉오리가 달라진다는 말씀이옵니까? 맛만 보고 홍시를 알아낼 수 있는 제 미뢰들이 늙어버렸다고요?”


“늙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이를 먹으면 맛봉오리의 크기도 줄어들고 숫자도 적어진단다. 보통 혀의 앞쪽에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맛봉오리는 기능이 떨어지고, 혀의 뒤쪽에 분포하는 신맛과 쓴맛을 느끼는 맛봉오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기능한다고 해. 덕분에 나이 들수록 단맛과 짠맛은 잘 못 느끼고, 신맛과 쓴맛은 잘 느끼게 된단다. 이런 변화는 45세부터 시작되고 60대에 최고조에 달한다는구나.”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있나. 장금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맛이 예전과 다르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선 최고의 맛’을 자부했던 장금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를 살피지 못한 한 상궁은 계속 맛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다.

“맛에 둔해진다고 생각해보렴. 짠맛을 잘 느끼지 못하면 음식에 더 많은 소금을 넣게 되겠지. 그래서 상감마마께서 네 음식이 짜다고 여기셨을지도 모르겠구나. 또 나이가 들면 입과 입술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고 침의 분비량도 줄어들지. 이런 것도 맛을 느끼는 데 영향을 준단다.


“노인들이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음식도 짜게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에 걸릴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먹는 습관을 더 잘 들여야 하는 거란다.”



장금이 한층 침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야 장금의 표정을 눈치 챈 한 상궁은 빙긋 웃으며 장금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렴. 미각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교육을 통해서 익혀지는 것이란다. 혀를 통해 직접 느낀 맛은 냄새와 함께 뇌에 남겨지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게 뭐겠니? 바로 기억이란다. 많이 먹어볼수록 미각도 더 섬세해지고, 맛도 더 잘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맛도 아는 만큼 느끼는 거란다. 너는 어려서부터 지금껏 많은 식재료를 맛보고, 음식도 만들었으니 그 기억이 모두 남아있을게다. 지금 상감마마의 까다로운 식성에도 곧 익숙해질게야.”


“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아지질 않습니다.”


미각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수분과 영양소가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는 것도 도움이 될게야.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과 설탕을 조절해서 맛봉오리가 상하는 것도 막아주고 말이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금. 한 상궁은 50세가 훌쩍 넘은 제자가 아이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수라상에서 손을 뗄 때 느꼈던 감정도 떠올랐다.



“장금아, 나이가 드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란다. 너는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을 만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식도 쌓지 않았니? 그게 다 나이가 들어서 가질 수 있는 능력이란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훗날 수라간을 떠날 때가 되면 나와 함께 음식에 대한 서책이나 보자꾸나. 책 속에는 우리가 음식을 만들며 보지 못했던 세상이 많단다.”



한 상궁의 따뜻한 표정을 보며 장금은 힘을 냈다. 홍시 맛을 알아낸 어린 장금이 음식과 맛 연구자로 다시 태어날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감나무에 걸려 햇살을 받은 홍시 하나가 무척 탐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I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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