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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루 집안, 나침반을 끌어당기다 목록

조회 : 2318 | 2014-10-08

어릴 때 할머니, 그러니까 내 할머니께서 해 주신 이야기가 있단다. 추운 나라에서 태어나 따뜻한 나라를 향해 떠났다가, 때가 되면 다시 추운 나라로 돌아와 다시 아이를 낳는 새들이 있다고 하시더구나. 철새라고 했지. 지도도 없고 목표로 삼을 물건도 없는 높고도 푸른 하늘에서 그래도 한 방향을 향해 참으로 일사분란하게 날아간다고도 하시더구나. 미물도 그러한데 사람이라면 더 잘 해갈 수 있지 않겠냐고, 분명 언젠가는 그리움을 지도로 삼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겠냐고 참으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지. 내가 부모님께 등 떠밀려 먼 마을로 고용살이를 떠나기 전날 밤에 말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어. 마님은 유난히 엄격했고 나는 언제나 일 못 한다 호통을 듣던 막내 하녀였기에 편지 한 통 쓸 시간조차 없었단다. 나 역시 향수병보다 원망이 더 컸지. 이렇게 어린 나를 이렇게 힘든 곳에 왜 보냈을까 모두 모여 자던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밤마다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몰래 울어댔지 뭐니. 그 눈물조차 마치 사막처럼 말라붙을 무렵 마침 새로 들어온 하인 하나가 있었단다. 도시에서 공부를 했다고 했어. 어쩌다 보니 지주의 고용살이로 굴러 떨어졌지만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 책을 살 돈을 모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웃던 얼굴이 선하구나. 엄격하던 마님조차 그에게 책을 보관할 방을 내줄 정도로 사람에게 살갑게 굴고, 또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지.

 

그 때는 나도 조금쯤 성장한 하녀였기에 개인 방과 함께 편지를 쓸 자유 시간도 받을 수 있었어. 하지만 난 편지를 쓰는 대신 그가 가져다 준 책을 읽었지. 그 책 중 하나에 어린 시절 들었던 새들의 비밀이 적혀 있더구나. 몸속에 조그만 자석이 있다고 했어. 지구도 커다란 자석이기 때문에 몸속 자석을 나침반 삼아 먼 거리를 갈 수 있다고도 하더구나. 철새뿐 아니라 돌고래, 벌, 도롱뇽, 심지어 박테리아조차 몸속의 작은 자석으로 아무 의심도 생각도 없이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아간다 했지. 그들의 지도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과학이었던 거야. 그 사실을 안 순간, 지도로 삼을 마지막 그리움조차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단다. 어쩌면 마치 내쫓듯 사람 등을 떠밀고 연락 한 번 주지 않던 가족에 대한 원망이 이미 그리움을 바삭하게 태워놨던 건지도 몰라.

이미 친해져 있던 그에게 책을 돌려주며 오랜만에 울었어. 지루하고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그 이는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새로운 고향이 되어주겠다 했단다. 생애 처음으로 받은 고백에 당황했지만 사실 나도 그 이가 꽤 좋았기에 결국 마음을 열고 새 지도를 만들 결심을 했단다. 이미 엄격함이 많이 사라진 마님은 진심으로 우리들을 축복해 주시며 자그마한 오두막을 선물해 주겠다 하셨지.

 

그렇게 분홍빛 미래가 확정된 저녁, 그 이가 조심스럽게 말해주더구나. 그가 내게 줄 고향에는 이미 아이들이 있다고 말이다. 순간 속에서 불꽃이 피었지. ‘이런 건 미리 이야기해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 ‘가족도 뭣도 없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냐’라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다가 결국 입을 닫아 버렸지. 내겐 결국 돌아갈 장소 따윈 없었던 걸까. 분한 마음에 말 대신 눈물이 쏟아졌단다. 다시 한 번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는 원망의 불길에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 이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지.

그 다음이 정말 예술이란다. 그 이는 분노와 실망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검은 가루가 든 봉지와 자석 하나를 꺼내더구나. ‘이건 철가루야’ 하면서 말이지. 황당해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니 그 철가루를 자석으로 바꾸지 않겠니?너희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니? 아내가 있었음을, 아이가 있음을 모두 속이고 결혼하자 하던 사람이 진실을 밝히면서 실험이나 하고 있는 그 상황을 말이다. 철가루에 재채기를 연발하던 그 사람은 새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하더구나. 내가 그에게서 받았던 책 중 하나에도 나와 있던, 그래 아마도 철새 이야기와 함께 있던 내용이었어.

자석은 철로 된 물체를 끌어당기지. 또 자기들끼리도 양끝의 다른 극끼리 서로 잡아당기거나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있단다. 이 힘을 ‘자기력’이라고 한다고 해.철 속에도 자석의 성질인 자성을 가진 작은 알갱이들이 있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이 알갱이가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자석과 같은 힘을 내지는 못하지. 그런데 철로 된 물체를 자석에 올려놓거나 자석의 한쪽 극으로 문지르면 알갱이가 일정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늘어서게 된단다. 이러면 철이 자석의 힘을 갖게 되지. 이런 현상을 ‘자화’라 부른다고 그 이가 말해줬단다. 다만 이 힘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흔들거나 충격을 주면 알갱이가 다시 흐트러지면서 자석의 힘이 사라지게 된다고도 해.

 

그 이는 우리가 모두 철가루 같다고 했어. 가족에게 버림받은 나도, 직업과 아내를 잃은 자신도, 부모 없이 이웃의 눈칫밥을 먹으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도. 하지만 우리가 모두 모여 한 줄로 늘어서면, 그렇게 서로를 당길 수 있다면 거기가 새로운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도 했지. 처음부터 이야기 못해서 미안하다고, 또 한 번 잃고 싶지 않아서 미적거리다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단다. 그리고 내게 철가루를 건네주더구나. 앞으로 당신의 지도로 삼으라고 말이다. 사실 철가루와 자석이 내 미래와 무슨 관계가 있냐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작은 기적이 마음에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야. 그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네 아버지란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나무꾼의 아내이자 두 남매의 어머니, 잘 늘어선 철가루 중 하나가 되는 길을 선택했지. 내가 너희를 처음 만난 날 혹시 기억할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고용살이 떠나던 딱 그 나이의 어린 소녀가 마르고 키만 껑충한 오빠 뒤에 숨어 눈치를 보며 뺨을 붉히고 있었지. 그 때 다짐했단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너희에게 만들어 주겠다고, 내가 너희의 자석이 되어 주겠다고. 세상에는 제 배 아파 아이를 낳지 않은 여인을 어미로 보지 않은 이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너희와 사는 동안 나는 내가 너희 어미라 믿었고 또 그리 행동했다. 성마르고 고집 센 내 성격에 마찰은 많았다만, 그래도 지난 3년간 우리는 꽤 괜찮은 철가루 집단이었다고 기억해. 그것마저 못된 계모의 자기만족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너무 내 이야기만 길게 쓴 것 같구나. 생애 처음으로 쓰는 편지라 여러 가지로 참 힘들어. 마치 현재의 우리 상황과 같구나. 내 그리 긴 생애를 살아온 건 아니지만 올해 같은 흉년은 처음이야. 홍수 다음에는 가뭄, 메뚜기 떼, 전염병….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재해가 이리도 한꺼번에 닥쳐올 줄은 몰랐어. 너희도 눈치 채고 있겠지만 우리가 물을 뜨던 우물은 이미 말라붙은 지 오래란다. 너희 아버지가 나무하러 가는 길에 있던 작은 샘물이 우리의 유일한 수원이야. 그나마 언제 마를지 알 수 없지. 시내에 나가도 식량이 없어. 수확이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팔 수 있는 마른 나무는 아직 숲에 남아 있지만, 그 나무를 사는 사람도 없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단다. 굶어죽는 일 외에는.

 

우리가 함께 죽어 가는 게 나을까, 너희만이라도 살리는 게 나을까. 너희 아버지와 몇 날을 고민했지만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지. 차라리 고용살이라도 시키면 좋으련만, 그 일자리조차 지금은 없지. 너희를 보낼 친척조차 우리에겐 없단다. 결론은 단 하나, 너흴 숲으로 보내는 것뿐이었지. 그건 너무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단다. 그는 너희를 살리고 싶다고도, 하지만 너희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도 했어. 그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또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데 왜 이리 우유부단하게 구는 걸까.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단다. 그냥 버리라고. 그 미련도 아이도 모두 버리고 차라리 독하게 굴라고 그리 외쳐버렸지. 너희가 바로 문 밖에서 남은 빵 부스러기라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걸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못된 계모를 원망하는 힘이 오히려 너흴 좀 더 단단하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지 모르니까.

결심을 내리고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의, 우리의 결정이 옳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나마 숲이 너희의 놀이터였다는 사실이, 깊은 숲에는 그래도 맑은 물과 과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마지막 희망이란다. 넷이 들어가면 넷 다 죽겠지만, 너희 둘만 남겨놓으면 그래도 조금은 더 오래 살지 않을까. 내일 아침 너희 아버지가 어제처럼 너희와 함께 나무를 하러 들어가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표독스러운 얼굴로 너흴 배웅할 거란다. 너희가 표식으로 삼았던 조약돌은 모두 치워두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고 숲에서 가만히 있어주렴. 집에 남은 마지막 밀가루를 긁어모아 구운 빵을 가방에 넣어 두었다. 마지막 돈 역시 빵과 함께 너희 가방에 들어있단다. 숲에서는 필요 없겠지만 혹시 헤매다 옆 마을로 나가더라도 당장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을 거야.

 

이 편지를 넣을지 말지는 아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겠지. 내 부끄러운 심정이 너희에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된단다. 만약 편지를 넣지 못하면 대신 철가루를 넣어두마. 너희 아버지가 너희에게도 그 실험을 보여줬다 했으니 의미는 눈치 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무 희망도 없는 것 보다는 작은 지도 하나는 챙기고 있는 게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정말 확률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살아 다시 만난다면 그 땐 내 눈을 향해 철가루를 뿌리며 화를 내도 좋단다. 그리움의 불길에 눈이 까슬까슬하게 말라붙어 가루조차 붙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마음껏 던지렴. 철가루를 던질 수 있을 때까지, 꼭 살아남으렴.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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