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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힘을 아는 예술가, 테오 얀센 목록

조회 : 1118 | 2013-01-30

1990년 네덜란드 바닷가에 기이한 모양의 물체가 등장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노란색 플라스틱 관을 뼈대 삼아 접착테이프로 연결했고 다리는 16개나 되었고 등에는 부채 같은 깃털이 달려 있었다. 엔진도 모터도 없지만 바람이 불면 저절로 움직여 ‘해변의 괴물(Strandbeest)’이라 불렸다.

이 기계생물체를 만든 이는 융합형 예술가 테오 얀센(Theo Yansen)이다. 1948년 네덜란드 헤이그 근교의 바닷가 마을 스헤베닝엔에서 태어난 얀센은 예술 전공자가 아니라 델프트공과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과학자다.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 온 벌레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컴퓨터로 단순한 가상 생물체를 만들던 어느 날, 실제로 움직이는 기계생물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해변의 괴물’은 화석연료나 전기모터 등 인공적인 에너지원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깃털이나 종이, 비닐로 만든 돛이 반응하며 온몸의 관절이 움직인다. 이런 종류의 예술품을 ‘움직이는 조각’ 이른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 부른다.

현대 예술가 중에는 키네틱 아트로 유명해진 경우가 많다. 콜더(Alexander Calder)는 바람에 따라 빙빙 돌아가는 모빌을 만들어 스타가 되었고, 동력으로 움직이는 팅겔리(Jean Tinguely)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분수대에도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얀센은 자신의 작품을 기계가 아닌 생물체로 여긴다. 명칭도 실제 생물처럼 라틴어식 학명을 붙인다. 앞에 놓이는 속명은 ‘바다의 동물’을 라틴어로 바꿔 ‘아니마리스(Animaris)’라 정하고 뒤에 종명이 매번 달라진다.

최초로 만든 생물체의 이름은 ‘아니마리스 불가리스(평범한 동물)’이다. 이후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아니마리스 쿠렌스 불가리스(걷는 평범한 동물)’가 탄생했고, 등에 달린 돛을 이용해 바람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2미터 높이의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바람으로 걷는 동물)’로 발전했다. 유전자처럼 동일한 모양으로 복제되고 변형된 여러 개의 ‘아니마리스 게네티쿠스(유전되는 동물)’를 해변에 풀어놓아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재료와 제작방식이 발전하면서 괴물의 덩치도 커지고 구조도 복잡해졌다. 길이 12미터에 높이 4미터로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아니마리스 우메루스(어깨 달린 동물)’가 등장했다. 압축공기를 모았다가 분출시키며 빠르게 움직이는 ‘아니마리스 페르키피에레 렉투스(근육을 가진 감지하는 동물)’도 나타났다.

아니마리스 시리즈는 진화를 한다는 점에서도 실제 생물과 비슷하다. 얀센은 자신의 저서 ‘위대한 몽상가’에서 진화시기에 따라 종을 분류했다. 접착테이프를 이용한 글루톤(끈끈이 생물), 끈을 이용한 코르다(끈 생물), 방향을 바꾸는 칼리둠(영리한 생물), 나무를 이용해 제작한 리그나툼(통나무 생물), 압축공기를 사용한 바포룸(공기 생물)에 이어 최근에는 뇌를 탑재해 판단을 내리는 케레브룸(뇌 생물)으로 발전했다.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아니마리스가 스스로 생각하고 홀로 돌아다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얀센은 “그 때가 되면 모든 아니마리스를 바닷가에 풀어놓고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둘 작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구상에 전혀 다른 또 다른 생명체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처럼 얀센은 예술과 기술, 생물학과 공학을 결합시켜 전에 없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과학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선배의 이름을 따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이유다. 외국 자동차 광고에서는 “예술과 공학의 장벽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물리학자에서 시작해 컴퓨터공학자로, 기계제작자로, 생물학자로, 예술가로 영역을 넓혀온 얀센은 이제 환경보호의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 기존의 인식을 바꾼 공로로 2009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그의 이름을 따 ‘테오얀센상’을 제정했다.

융합을 통해 창의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얀센의 인기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각국에서 취재진이 밀려들며 전시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 캐나다 등 서구권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일본, 대만 등에도 초청되어 강연과 전시를 선보였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9년 얀센을 초청해 작품을 소개했고 2010년에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장소 문제로 실내에만 16종의 아니마리스를 전시했지만 관객들의 호기심과 찬사는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찾은 얀센은 과학꿈나무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이자 뿌리”라며 새로운 시각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계선을 넘는 일이 두려워 제자리에만 머무른다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없다. 꿈을 향해 열정을 다하는 테오 얀센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융합을 시도하고 창의성을 현실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테오 얀센의 작품 animaris gubernare 동영상>





글 :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출처 :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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