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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민자연사연구소 목록

조회 : 1766 | 2015-01-08

희귀광물 약 3000점을 모아 전시 중이라는 건 사전 취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는 사실 직접 들르기 전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기자는 더군다나 이번 여름 유명한 영국 자연사박물관을 다녀왔다. 그렇게 민자연사연구소에 도착해 첫발을 들이는 순간.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희귀광물 원석을 3000점 이상 모으면서 여태껏 한 점도 판 적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팔게 되면 그 후로는 더이상 수집가가 아니라 ‘딜러’죠.”


지난달 17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민자연사연구소를 찾았다. 33년 동안 희귀원석을 수집한 이지섭 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연구소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발광다이오드(LED)의 불빛을 받고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광물 표본이 아닌 자연의 예술품이었다.

 

이 소장은 2011년 4월 사재를 털어 496㎡(약 150평) 전시 규모의 민자연사연구소를 차렸다. 자연사연구소 앞에 붙이는 ‘민’은 광물을 뜻하는 영어 ‘미네랄(mineral)’의 앞 세 글자(min) 또는 둘째 아들 이름 중 한 글자인 민(玟·옥돌)을 뜻한다고 한다.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 연구소는 한 달 유지비만 약 500만 원이 든다. 월세와 관리비 외에도 이 소장이 애지중지하는 희귀광물표본의 도난을 막기 위한 비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지섭 전 부사장이 운영하는 민자연사연구소 내부 모습. - 이우상 기자 제공
이지섭 전 부사장이 운영하는 민자연사연구소 내부 모습. - 이우상 기자 idole@donga.com 

 

●월급의 절반을 ‘돌’에 쏟아 붓다


그는 모은 표본을 단 한 개도 팔아 본 적이 없는 ‘뼛속까지 수집가’다. 이 소장의 이색 취미가 시작된 것은 1981년 삼성전자 과장 때 다녀온 미국 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난 희귀광물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다.

 

“거기서 본 표본들은 대학 때 금속공학을 공부하며 봐왔던 차가운 광물표본과는 전혀 달랐어요.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야말로 자연이 만든 천연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장 기념품점을 들러 제 첫 수집품을 구매했습니다.”

 

그의 첫 수집품은 ‘쌍둥이 눈사람’ 모양의 마노다. 마노는 석영과 옥수가 혼합된 보석이다. 이 소장은 당시 60달러를 주고 첫 수집품을 샀다. 1980년도 당시 환율과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값싼 기념품은 아니었다.

 

이 소장의 컬렉션은 그가 해외출장을 나갈 때마다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소장은 연 8~10회 해외출장을 나가 5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짬이 날 때면 광물시장이나 광산 인근 지방에서 표본을 구했다.

 

“계산해 보니 매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광물을 구하는 데 썼습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아내와도 갈등이 컸죠. 아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길에 나앉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게 해준 아내에게 고맙죠.”

 

● 수집가의 조건은 열정과 경제력, 그리고…


그런데 월급의 절반을 광물을 모으는 데 쓴 이 소장도 종종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아쉬운  인연’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미 콜로라도 주 덴버로 출장 갔을 때 그는 인근 스위트홈 광산에서 5~6cm 크기의 능망간석과 마주쳤다. 하얀 수정 위에 빨간색으로 꽃을 피운 듯한 이 원석 표본은 이 소장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선뜻 지불하기엔 당시 주머니 사정상 무척 비쌌어요. 그때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들이 스쳐갔죠. 무리를 해서라도 살까, 아니면 나중에 좀 더 좋은 표본을 더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진 않을까. 결국 다음에 사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 그보다 더 아름다운 표본을 본 적이 없어요. 수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연’이라는 걸 뒤늦게 다시 깨달았죠.”

 

이 소장이 꼽는 ‘수집가의 조건’은 3가지다. 수집품에 관심을 갖는 열정과 수집품을 손에 넣기 위한 ‘경제력’, 마지막으로 ‘인연’. 이 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광물 표본은 세상에 똑같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자연이 만드는 예술품이다. 표본을 구성하는 원소의 비율, 만들어진 환경, 조건 등이 똑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표본은 저마다의 특징과 개성을 갖는다. 그만큼 상위 1% 품질(미적인 기준)의 표본을 만나기 위해선 인연이 중요하다. 고흐와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 유일무이하듯 한 번 기회가 왔을 때 놓쳐버리면 그 인연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이런 점은 인터뷰 중 그가 줄곧 수집한 광물의 개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훌륭한 ‘예술품’이 아니라면 그 개수가 아무리 많아도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눈곱만 한 다이아몬드 10개와 1캐럿의 다이아몬드 1개. 어느 것이 더 귀할까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화석이 포함된 암석 전시물 - 이우상 기자 제공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화석이 포함된 암석 전시물 -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 ‘아름답다’라는 광물의 원초적인 매력


뜻밖에도 이 소장의 컬렉션 중 20%는 아내와 두 아들이 모은 것이다. ‘생계의 위협’까지 느끼며 남편의 취미생활을 만류해왔던 아내가 원석 모으기에 동참한 까닭을 이 소장은 ‘원석의 아름다움’이라는 원초적인 매력에서 찾는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원석 표본들의 청소 같은 관리를 아내가 해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 아내도 광석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생겼죠. 두 아들은 ‘조기교육’ 덕분이랄까요? 어렸을 적부터 희귀하고 예쁜 원석들을 보고 자랐으니 자연스레 광물 보는 눈을 떴습니다.”

 

광물을 보는 눈이 생겼으니, ‘인연’의 소중함도 덩달아 알게 됐다. 이 소장의 아내는 고품질의 원석을 보면 남편에게 ‘지르라(구매하라)’고 귀띔을 해주고, 두 아들은 직접 구매해 아버지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그렇게 이 소장의 가족은 그가 강요하지 않아도 가족 전체가 원석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이 소장은 원석의 이 원초적인 매력을 다른 데도 이용할 생각이다. 자연과학의 재미를 모르는 대중과 청소년에게 흥미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그의 야심이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부럽지 않은 자연사박물관 만들고파

“금, 은, 다이아몬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아름다운 원석 표본들을 보다 보면 누구나 ‘이건 무슨 원소로 이뤄졌을까’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빛깔과 결정 모양이 만들어지게 될까’ 등을 궁금해 하며 자연과학의 매력에 빠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소장은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원석만 모으지 않았다. 그의 꿈은 그가 모은 광물들로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지구상에 원소는 현재 118종 정도가 알려져 있고, 이 원소들이 결합해 4300여 종의 광물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4300종은 크게 250종으로 나눌 수 있죠. 저는 우선적으로 250종의 광물 표본을 빠짐없이 모으는 데 애를 썼습니다. 그래야 박물관을 찾으시는 분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광물을 보고 갈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영국 자연사박물관 등 유명 박물관을 가도 250종의 광물을 모두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국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50여 종의 광물만이 상설 전시돼 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국내에서 좋은 자연사박물관이 만들어질 때 돕고 싶습니다. 그 전이라도 특별전시회 등으로 먼저 선을 보일 수도 있겠죠.”

 

이 소장은 그가 모은 표본이 다양할 뿐 아니라 미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는 데 자신감을 내비쳤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똑같은 석영, 능망간석이라도 ‘아름다움’이란 기준을 더해 모은 그의 수집품은 대중에게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고등학교 과학실에서 만져 본 ‘모스굳기계 광물 키트’를 떠올려보면 그 의미를 새삼 알 수 있다.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같은 방해석이라도 이 소장이 모은 방해석이 결정 모양이 더 크고 투명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기증’이라는 말을 꺼내는 데는 조심스러운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걸 팔아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하지만 아무 데나 쉽게 기증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칫하면 수집품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거든요. 정말로 소중하게 다뤄줄 수 있는 곳에 기회가 닿으면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려고 합니다. 제가 뼛속까지 수집가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허허.”

 

● 수집에는 끝이 없다

커다란 박물관에 원석 표본들을 기증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미 우리나라 자연과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민자연사연구소를 찾으면 이 소장이 나서서 직접 모든 전시물에 대한 히스토리와 과학적인 유래를 설명해준다. 이곳을 찾은 기자도 이날 한 시간 넘게 이 소장을 쫓아다니며 원석들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 소장은 “설명하는 것 또한 제가 좋아서 하는 취미활동의 일부”라고 대답했다.

 

그는 최근 블로그(www.naturehistory.com)도 시작해 광물에 관한 이야기를 누리꾼에게 털어놓고 있다. 그는 이제 광물 수집가뿐 아니라 광물 전문가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날이 올 때까지 원석들을 모으고 싶어요. 수집에 끝은 없죠. 저는 수집가니까요.”

 

 

 

이지섭 전 삼성전자 부사장 - 이우상 기자 제공
이지섭 전 삼성전자 부사장 -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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