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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를 회고하며 목록

조회 : 2138 | 2015-01-05

워너브러더스코리어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어 제공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영화 ‘인터스텔라’가 이달 13일 기준 누적관객 950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하반기에 개봉한 SF영화 ‘그래비티’가 320만 명을 동원한 것에 비하면 몇 배나 많은 관객들이 인터스텔라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인터스텔라의 인기 덕분에 영화 속 과학 이론을 설명하는 기사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취재 도중 있었던 에피소드와 함께 부족한 지면 때문에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이 코너를 이용해 몇 자 적어본다.

  

탐험대가 처음 도착한 행성은 인근 블랙홀의 질량으로 인해 시간이 지구에 비해 더디게 흐르는 곳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탐험대가 처음 도착한 행성은 인근 블랙홀의 질량으로 인해 시간이 지구에 비해 더디게 흐르는 곳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물리학자들의 신성불가침 영역, 킵 손 교수


“킵 손이 계산한 거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인터스텔라 기사를 쓰기 위해 국내 전문가들을 취재하던 중, 이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쿠퍼(매튜 매커너히)와 아멜리아(앤 해서웨이)가 첫 번째 파도행성에 들렀다 다시 모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던 물리학자만 폭삭 나이가 든 모습이었는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지 궁금해 묻던 터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쿠퍼와 아멜리아를 착륙선에 실어 내려 보낸 모선(母船)은 파도행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마치 1969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탄 달 착륙선이 달 표면에 착륙하고 마이클 콜린스는 달 궤도선에 남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영화에서도 모선이 행성 주위를 돌고 있었다면 쿠퍼와 아멜리아는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 몇 km 밖에 안 떨어진 모선에서 기다린 물리학자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옥의 티’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자, 당시 취재에 도움을 준 두 물리학자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위와 같이 대답했다.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영화 시나리오 작업 전반에 참여하고 영화 속 과학적인 내용들을 그가 감수한 만큼 ‘틀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천체물리학자들에게 킵 손이란 어떤 존재인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손 교수와 함께 연구한 경험이 있는 김성원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호킹이 영국을 대표한다면 킵 손은 미국을 대표한다”며 “현재 통용되는 블랙홀 이론의 상당부분을 킵 손이 정립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진 않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업적을 이미 충분히 쌓은 학자”라며 “대중강연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어서 일반인에게도 인기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킵 손은 전문적 권위와 대중성을 함께 겸비한 오늘날 몇 안 되는 물리학자라는 뜻이었다. 천체물리는 물론 중력파 연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니 ‘킵 손을 까면(?) 사살’이라는 물리학자들의 태도도 차츰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킵 손 교수가 직접 영화의 소품이 될 칠판에 물리 공식을 적고 있다. 물리학자들에게 킵 손이란 존재는
 
킵 손 교수가 직접 영화의 소품이 될 칠판에 물리 공식을 적고 있다. 물리학자들에게 킵 손이란 존재는 '성역' 그 이상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쿠퍼 역을 맡은 매튜 매커너히(왼쪽)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쿠퍼 역을 맡은 매튜 매커너히(왼쪽)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뻔한 내용도 놀란이 만들면 때깔이 달라지더라


개인적으로 놀란 감독은 획기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흔한 소재를 ‘죽여주는 때깔’로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꿈속의 꿈’을 중심소재로 이용한 ‘인셉션(2010)’도 사실 소재 자체는 신선하다 할 수 없지만 기가 막힌 영상과 줄거리로 꿰어낸 재주가 신통방통했다.


그리고 이런 놀란 감독의 재주는 ‘인터스텔라’에서도 통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기인하는 쌍둥이패러독스는 사실 ‘하드SF’ 팬들에겐 하등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다. 소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 ‘스타트랙:더 비기닝(2009)’ 등의 영화에서도 이미 핵심적인 소재로 쓰였다.

 

뻔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소재지만 놀란 감독은 이를 이용해 초를 다투는 긴박감을 연출하기도 하고, 반대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장치로도 활용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여행을 떠난 쿠퍼가 지구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때문에 영화 ‘스피드(1994)’의 주인공처럼 쫓기고, 자신의 나이를 추월해 부쩍부쩍 늙어가는 자식들을 숨죽이고 지켜봐야 하는 모습은 SF란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통했다’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인터스텔라가 ‘시간 패러독스’의 문제를 교묘하게 피해갔다는 사실이다. 시간 패러독스란 ‘자식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부모를 죽이는 일이 가능할까’라는 극단적인 예시로 설명이 가능하다. 쿠퍼는 5차원 공간 안에서 중력을 이용해 과거의 딸과 교신한다. 제2의 지구를 찾아 가족을 두고 떠나려는 과거의 자신을 붙잡으라는 의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정작 ‘미지의 그들’이 아닌 현재의 자신이었던 것.


과거의 딸과 교신해 과거를 바꾸려 하지만 쿠퍼는 이미 지나간 일을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정확히 재현함으로써 결국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래의 존재가 과거의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인과가 뒤바뀌는 ‘시간 패러독스’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쿠퍼는 아멜리아(앤 해서웨이)를 구하기 위해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다.
 

쿠퍼는 아멜리아(앤 해서웨이)를 구하기 위해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다. '펜로즈 과정' 덕분에 아멜리아 박사는 무사히 블랙홀에서 탈출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가족 드라마’와 ‘정통 SF 공식’을 모두 지키다


이른바 ‘정통’이라 불리는 SF에서는 등장인물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닥쳐온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공식’이 있다. ‘딸 바보 아빠의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로 희화화 되기도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SF영화다. ‘에일리언3(1992)’에서 강력한 무기의 도움을 받는 대신 급격한 온도 변화를 이용해 우주 괴물 에일리언을 물리치는 장면 또한 이러한 공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쿠퍼 또한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아멜리아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회전하는 거대블랙홀 가르강튀아에 접근해 인듀런스호가 고속으로 항해하던 도중 쿠퍼는 자신이 탄 우주선을 분리시켜 블랙홀 안으로 밀어넣고 아멜리아가 탄 우주선 본체는 블랙홀 바깥으로 내보낸다. ‘펜로즈 과정’을 이용한 장면이다.

 

회전하는 블랙홀(커 블랙홀)에서 탈출속도가 광속을 넘어서는 ‘에르고 스피어’ 바깥쪽 특정 궤도에 있는 물체가 2개로 분리되고 둘 중 하나가 빨려 들어간다면,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비슷한 이유로 반대 물체는 블랙홀에서 튕겨져 나가게 된다. 정통SF의 공식을 충실하게 재현한 쿠퍼의 선택은 이후 영화의 극적 반전의 단초가 된다.

 

내년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지 꼭 100년째 되는 해다. GPS를 통해 길을 찾으며 일반상대성이론의 도움을 한껏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이 영화가 있기 전까지 일반상대성이론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을까.


인터스텔라를 통해 고조된 과학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되길 기대해 본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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