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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名畵)는 대기오염을 알고 있다 목록

조회 : 3345 | 2014-04-23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이자 사상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을까. 최근 시청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민물장어’도 그중 하나란 사실을 알게 됐다.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 속 식탁에는 와인과 빵 그리고 네 조각으로 잘린 민물장어가 놓여있다. 이 중 민물장어는 다빈치가 살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를 흐르는 아르노강에서 잘 잡혀 이곳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어종이라는 것이다. 가난했던 다빈치는 자신이 종종 사먹던 값싼 물고기를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식사자리에 올려 일생의 역작을 완성한 셈이다.

 

  유명 화가들이 그린 작품 속에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정보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을 보면 조선시대 풍습과 유행 등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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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들이 쏟아낸 이 방대한 양의 사료(史料)가 최근에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준 모양이다. 그리스의 과학자들이 풍경화 분석을 통해 시대에 따른 대기 중 불순물 농도 변화를 확인하는 미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스 아테네공과대와 파트라스대, 아테네학술원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1500년~2000년 사이 유명 화가들이 일몰(日沒)을 그린 풍경화의 디지털 이미지를 모아 50년 단위로 묶은 뒤, 그림 속 하늘의 붉은 정도를 에어로졸 광학두께(AOD) 값으로 나타내는 연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대기화학과 물리학(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 25일자에 발표했다.

 

  AOD는 가시광선 영역의 빛이 얼마나 산란·흡수됐는지 나타내는 지수다. 이 값이 크다는 것은 대기 중에 에어로졸이 많고 산란이 활발하게 일어나 하늘의 붉은 빛도 강해졌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각 시기별 풍경화의 AOD 값을 계산해 본 결과, 실제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령, 19세기 중반 풍경화들의 AOD 값은 평균 0.15였지만 20세기 말에는 0.20으로 치솟았다. 산업화로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해 각종 오염물질이 대기로 방출된 상황이 고스란히 그림에 반영된 것이다.

 

  특히 몇몇 풍경화 속 석양은 유난히 짙은 붉은색으로 표현돼 있었다. 이는 ‘화산 폭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지는 태양을 마주한 여인’을 그리기 3년 전인 1815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는 탐보라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올라가 태양빛을 차단하는 바람에 다음 해인 1816년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여름을 맞이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가 이 그림을 그린 1818년 역시 화산 폭발의 여파로 대기 중 화산재가 많이 떠다녔을 때였기 때문에 붓을 든 그의 눈에는 하늘이 유독 빨갛게 보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가 1885년 그린 ‘승마’ 속 하늘이 유난히 붉은 이유도 1883년 발생한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과 무관하지 않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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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술 이외의 분야에서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두 사례만 하더라도, 다빈치의 붓끝에서 탄생한 민물장어 네 조각은 수백 년이 지난 현재 르네상스시대를 살던 이탈리아 서민들의 식생활을 가늠하는 정보가 됐고, 본 그대로의 자연을 캔버스에 옮긴 화가들의 작품은 측정 장비조차 없던 시절의 대기 청정도를 짐작하는 지표가 됐다.

 

  이는 여전히 예술계와의 융합연구에 조심스러운 우리 과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서울대의대 생리학교실 전주홍 교수 역시 “예술과 과학이 만나 발휘할 수 있는 시너지는 의외로 크다”고 말했다.

 

  그리스 연구진의 시도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팔만대장경이나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 등 오랜 세월 축적해온 자랑스러운 문화자산을 활용해 진행한 연구 성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게재하는 국내 연구팀이 나올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과학동아 전준범 기자 bb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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