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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의 정점…20초 간의 깊은 '울림' 목록

조회 : 2458 |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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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헤미아왕국으로 건설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번창하다 1918년까지 약 300여 년 간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았던 체코 프라하. 유럽 종교와 문화의 발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체코는 동유럽 공산주의 나라들의 변혁의 신호탄이 된 ‘프라하의 봄’까지 세계사에서도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난 곳이다.


  지난 2월 프랑하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까를교와 까를교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프라하 성이다.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구시가지에서도 매 시각 10분 전부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프라하 천문시계다.

 

 
● 천동설의 정점, 천문시계
  이 천문시계는 1410년 만들어졌다. 천체의 움직임을 반영해 만든 천문시계 가운데 전세계에서 3번째로 제작됐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움직인다.

 

  프라하 천문시계는 한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시간과 천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아스트로라비움’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1490년경 달력 역할을 하는 ‘캘린더리움’이 추가됐다. 200년이 지난 17세기에는 시계 주위에 조각상들이 추가됐고 이 때부터 4개의 조각상은 매 시 정각에 간단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1860년대 후반 천체시계의 제일 윗부분에 12사도의 행진을 보여주는 장치가 마지막으로 더해졌다.


  왕실의 시계 제작공이었던 미쿨라시와 카를 대학 수학 및 천문학과 교수였던 얀 신델이 초기에 제작한 천문시계는 당시 지배적인 우주관이었던 천동설을 바탕으로 천체의 움직임과 시간을 한꺼번에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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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바깥 원에 새겨진 아라비아 숫자는 해가 진 시점을 0시 혹은 24시로 설정하고, 바늘은 해가 지기까지 남은 시간을 가리킨다.

 

  안쪽 원의 로마 숫자는 지금과 유사한 24시간 시간 체계를 보여주며 로마 숫자 안쪽에 표기된 아라비아 숫자는 해가 뜬 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중앙의 지구본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임을, 즉 천동설을 의미한다. 캘린더리움 시계 원판의 기호화된 황도 12궁은 양, 황소, 쌍둥이, 사자, 처녀 등 계절에 따른 별자리의 위치를 표시하고, 현재 태양이 가장 가깝게 위치한 별자리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황도 12궁의 바깥 동심원에는 농민들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이를 테면 양자리에 태양이 위치해 있을 때는 밭을 갈아야 하는데 시계에 밭을 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식이다.


●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
  매 시 정각에 관광객들이 천문시계 앞으로 모이는 이유는 매 시 정각마다 움직이는 인형 모양의 조각상을 보기 위해서다. 또 이와 동시에 시계 맨 위 창문이 열리면서 행진하는 12명의 사도도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


  아스트로라비움 양옆의 이들 조각상은 당시 사람들이 경멸하고 두려워했던 대상을 상징한다. 거울을 든 사람은 자만과 허영,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은 오른손에 금주머니를 들고 있는데 탐욕을, 왼손에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은 죽음을, 비파를 들고 있는 사람은 쾌락을 상징한다.


  정각이 되면 해골이 오른손을 흔들면서 종을 치기 시작하는데 들고 있던 모래시계를 비스듬하게 기울인다. 다른 조각상들은 머리를 흔들어대는데,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모래시계를 수평으로 눕힌 것은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른 조각상들이 머리를 흔들어대는 것은 이 죽음이 싫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조각상들이 움직이는 동안 시계 맨 위에서는 12사도의 행진이 시작된다. 자만과 허영, 탐욕, 그리고 쾌락에 물든 인간들이 죽기 싫어하는 모습을 사도들이 내려다보는 듯하다. 마지막에 황금수탉이 뻐꾸기 시계에서 뻐꾸기처럼 나와 ‘꼬끼오’ 하고 울면서 끝이 난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20~30초에 진행된다.


  프라하 천문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 당시 천동설과 천문학, 수학, 종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천문시계는 그냥 짧게 스쳐지나가며  ‘멋있다’ ‘아름답다’ ‘신기하다’는 감상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이 있다.

 

  전세계에서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에게 (비록 천동설이긴 했지만)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인간과 탐욕, 허영, 쾌락 등에 사로잡힌 인간의 삶, 그리고 시간의 정지를 의미하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라는 당시 유럽 선조들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과학동아 김민수 기자 min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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