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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은 조선시대 탐관오리도 벌벌 떨게 해 목록

조회 : 946 | 2013-07-16

  ‘측정 만능시대’다. 예전에는 측정이라고 하면 그저 길이를 재고, 무게를 달고, 시간을 재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물론 취업,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이리저리 재고 맞추고 있다. 측정 과잉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측정하고 있는 잣대는 정확한 것일까.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의 학장이자 철학과 교수인 로버트 크리스의 ‘측정의 역사’에는 인류 역사를 반추해보면 측정의 기본이 되는 표준 도량형이 권력에 의해 오용되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천재적인 사람과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게 만들어 자본주의 출현의 핵심이자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등한 인간관계를 가져오게 만든 측정과 표준은 무엇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표준이라는 것이 인식하고, 중요한 것이구나라고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안고, 2일 우리나라 표준 연구의 중심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강대임 원장을 만났다. 강 원장은 “표준이라는 것은 공기와 같이 과학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공기가 없는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기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고 공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표준과학도 우리 일상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죠.”

 

●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보다 소중히 여긴 ‘유척’
.

▲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이 연구원 내에 있는 측우기 모형 앞에서 표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표준과학硏 제공
 
  강 원장은 “표준과학연구원은 1978년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됐을 때 처음 자리잡은 출연연”이라며 “주소가 도룡동 1번지인데, 세종로 1번지에는 청와대가 있고, 여의도 1번지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것만 봐도, 대덕연구단지에서 우리 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냐”고 너스레로 입을 열었다.

 

- 연구원 부지가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연구소가 처음 자리 잡을 때 좀 넓게 자리를 잡은 편입니다. 표준연구 특성상 소음과 진동 등을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연구시설이 지하 아니면 지상 1~2층 이내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표준연구원들을 가봐도 부지가 넓은 편입니다.”

 

- 일반인들은 원자력이나 항공우주, 핵융합, 식품연구원 하면 ‘뭐 하는 곳이구나’라고 감이 잡힌다고 하는데 ‘표준과학연구원’하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표준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우리 일상생활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사실 표준과학의 기본이라고 하는 도량형이라는 것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겠어요. 마트에 가서 야채를 사는데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고 하면 사회가 안정되겠습니까. 조선시대 암행어사 아시죠? 암행어사가 뭘 들고 다닌 줄 아십니까?”

 

- 마패 아닙니까?
“마패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유척이었습니다.”

 

- 유척이요?
“(유척을 들어보이며) 이게 유척이라고 하는 건데요, 유척은 놋쇠로 만든 일종의 자를 말합니다. 암행어사는 임금한테 두 개의 유척을 받았다는데요, 하나는 죄인을 벌할 때 쓰는 태나 장 같은 형구 크기가 법전 규정에 맞는 것을 쓰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고, 하나는 국가에서 정한 도량형에 맞춰서 세금을 걷는지 확인하기 위한겁니다. 요즘처럼 규격에 딱 맞는 자가 없으니까 못된 사또들은 자나 되를 속여서 쌀이나 옷감 등 세금을 자의적으로 거둬들인거죠. 암행어사는 각 고을에서 쓰는 자나 되가 정확한지 알아보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암행어사는 표준과학을 등에 업고 탐관오리를 조사한 감사관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조선시대에도 도량형이 사회 안정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말입니다.”

 

- 도량형으로 설명해주시니까 표준과학이라는 것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진시황이 중국을 처음 통일했을 때도 제일 먼저 한 일이 도량형을 통일한 것이라잖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도량형이나 표준은 국가통치의 중요한 수단이란 말입니다. 옷가게에서 치수에 맞는 옷을 고르거나, 고기를 살 때 무게를 잰다거나, 약속시간을 정하는 등 표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인식을 못하고 그저 어렵다고 느낀것 아닐까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정확한 측정이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적이 얼마 전에 있었죠. 지난해 런던 올림픽 펜싱종목 신아람 선수 사례 보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1초를 심판이 자의적인 1초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엄청난 오심이 나온거 아닙니까.”

 

- 신아람 선수 사례를 얘기하시니까 시간에 대한 표준연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일상생활에서는 시간 표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자상거래의 경우 시간 베이스로 작동하는 만큼, 0.1초의 오차라도 생기면 몇 십억원 몇 백억원이 왔다갔다 합니다. 또 휴대전화도 시간의 표준이 중요합니다. 음성을 쪼개서 보내는 휴대전화에서 미세한 시간 오차가 생기거나 시간 계산이 잘 못 될 경우 혼선과 같은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거죠. 현재 우리 연구소는 300만년에 1초 오차가 예상되는 표준시를 2008년에 개발했습니다. 세계 6번째로 정밀한 표준시인데, 올해 말 선보일 표준시는 세계 3번째로 정밀한 것인데, 1억년에 1초 오차가 있는 시계가 나올 겁니다. 사실 이런 연구들 자체가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표준과학연구원은 뭐하는 곳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죠.”

 

- 길이나 무게,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데 그냥 지키면 되지 굳이 국가에서 나서서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품을 만들거나 거래를 할 때는 정확한 것이 생명이잖아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측정을 누가 정확히 하냐에 따라 연구성과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누가 정확히 측정을 하고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가 열리냐 그렇지 않느냐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전반의 측정 기준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2025년 전 세계 1위 표준연구원 달성? “다 바꾼다”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표준과학硏 제공
▲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표준과학硏 제공
 
 

- 그렇다면 우리나라 표준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저희 연구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1975년에 만들어졌으니까 이제 38년이 됐습니다. 다른 나라 표준연구기관을 보면 대부분 100년이 넘었습니다. 제일 오래됐다는 독일의 표준연구원은 올해로 설립한지 125년이 됐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렇게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5~6위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출연연들 가보면 대부분 자신들이 세계 톱 10 안에 들었다고들 말하는데, 소위 ‘뻥’이 좀 섞인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전 세계 표준기관들은 표준 비교시험이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봅니다. 비교결과가 연구원 수준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표준비교시험 본선에 나가는 나라가 10~15개 국 정도 되는데요, 이렇게 본선에 나간 것이 현재 346건으로 현재 세계 6위입니다. 또 표준비교시험 주관을 하는 나라는 본선 진출국 중에서도 톱 레벨에 있는 나라인데요, 이 주관국으로 선정된 것도 52번으로 세계 5위 입니다.”

 

- 정확한 수치로 얘기를 해주시니까 훨씬 낫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얘기하지만 5~6위에서 4위가 되고, 3위가 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표준과학의 1위 국가가 되는게 목표입니다. 올 초 직원들하고 현충원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도 ‘2025년 50주년이 되는 해에 세계 1위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하도 떠들고 다녀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합니다.”

 

- 1위가 되기 위한 전략이 따로 있습니까.
“우선 우리가 짧은 시간에 5~6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을 말씀드리자면, 연구자 대부분이 한 분야에서 20년 최대 40년이상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출연연의 문제로 그동안 지적받아온 PBS 제도 시행에도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전 세계 표준기관들과 국제비교에서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성과비교를 할 수 있는 기준이 확실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에 충실해왔던 덕분인데요, 이제 1위를 하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겁니다. 그동안 빠르게 빠르게 해왔다면, 이제는 천천히 잘 보고 정확히 판단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할 때 거침없이 나가야 한다는겁니다. 그리고 남들이 안 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비중을 높이자는 겁니다. 또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주변을 조용히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 연구자들 주변을 조용히 만들자는건 무슨 말씀입니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잖습니까. 가정이 안정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연구원들의 배우자가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아서 육아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요즘은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저도 연구원 시절에 이런저런 성과를 낸 것도 다 집사람이 내조를 잘 해줬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적 사정도 있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그렇게 하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되면서 맞벌이 연구원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만약 맞벌이 연구원인데 갑자기 애가 아프다고 연락을 받으면 그거 연구할 수 있겠어요. 사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연연구기관들 중에서 처음으로 원내 어린이집을 만들기도 한거죠. 어린이집 만든 다음 연구원들의 연구 집중도도 높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 과학기술인도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야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강대임 원장은 최근 명함에 직책 하나가 더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과출협) 회장을 맡게 된 것. 이전에는 협의회 회장이라고 해도 출연연 원장들끼리 함께 모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정부의 출연연 개편 논의와 함께 최근 정부의 창조경제 드라이브 등 대응해야 할 일이 많아져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란다. 출연연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강 원장은 국민들이 출연연에 대해 불신을 하는 이유는 모두 출연연에 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 지난 정부 말부터 출연연은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연연 변화에 대해서 정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죠. 제가 1982년에 연구원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 때도 출연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정권 바뀔 때마다 매번 논의가 되고 있는거 아닙니까. 지난해 과출협 회장을 맡고 나서 생각한 것도 과연 출연연들이 스스로는 많은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해왔는데 그것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가 된 것일까 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 사실 국민들은 출연연이 변화하겠다고 말을 해도 이제는 거의 믿지 않을 정도로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국민들이 출연연의 제대로 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출연연 개혁이 실패한 것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톱 다운 방식의 개혁이 돼 왔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항상 뭐가 바뀌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변한게 없다고 느끼는거죠. 지난 5월 7일에 기관장들이 모여서 개선방안을 발표한 것도 어떻게 보면 출연연 변화에 대해 국민들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자율성을 주면 정말 바꿔보겠다라고 하니까 정부도 그렇고 국민들도 그렇게 해봐라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제대로 못하면 정말 어렵게 되는거죠. 기회와 위기가 상존하는 상황입니다. 출연연의 역사가 다른만큼 마다 목표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의 잣대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출연연의 기본 미션은 공공 연구인프라를 확립하고 사회현안 문제 해결에 나서자 아니겠습니까. 그것에 충실하겠다는 겁니다.”

 

- 사실 사회현안 문제 해결이나 공공인프라 확립 같은 목표는 이전에도 있어왔고, 해오고 있다고 항상 주장하는 것들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실 그동안도 쭉 해왔죠. 그런데 출연연이 비판을 받는 것은 연구자들이 연구개발에만 그쳤기 때문입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까지 뒷담까지 출연연이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사회현안 문제 해결은 기술개발부터 활용까지 전반적인 사이클에 출연연이 적극 나서자는 얘기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출연연 연구자들은 물론 과학기술인들이 자유롭지 못하죠.”

 

●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과학기술 연구하고파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 표준과학연구원 강대임 원장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 사회현안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원장으로써가 아니라 연구자로써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십니까?
“연구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연구 성과를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정부에 융합연구사업본부를 맡아서 일을 했었는데, 그 때부터 여러가지 요소기술을 접목시켜 실용화하는 도우미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도우미 연구라는게 뭘 말하는 겁니까.
“장애우들을 위한 연구를 말하는 겁니다. 시각장애우가 일반인들처럼 볼 수 있는 도우미 기술, 청각장애우가 음악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도우미 기술 등이죠. 도우미 기술의 핵심은 이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 장애우들에게 최종 전달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연구 잘해서 상용화시켰는데 그 장비가 하나에 50만원 100만원 하면 누가 쓸 수 있겠습니까. 기능은 훌륭한데 장애우들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은거죠.”

 

-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연히 쉬운 문제는 아니죠. 그런 것들은 해외 시장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켓이 큰 것도 아니구요. 요즘은 선진국이 되는 요건은 무엇일까를 가끔 혼자 생각합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헤서 연구자들은 비즈니스 마인드는 물론 따뜻한 과학기술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연기관들도 국가와 국민들로 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 문제나 복지 문제 등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과학기술인의 은퇴 후 삶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따뜻한 과학기술을 하는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용하 기자 edmo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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