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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독, 비소 먹는 박테리아는 없다! 목록

조회 : 1268 | 2012-07-24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르겠지만 2010년 12월 2일(현지시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며칠 전부터 예고한 ‘중대발표’를 했다.

미국의 한 호수에서 DNA 같은 생체분자에 인(P) 대신 비소(As)를 쓰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주장으로 곧바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기자도 NASA 펠리사 울프-사이먼 박사팀의 논문(‘사이언스’ 2일자 온라인판)을 내려 받아 읽고 그날로(한국은 3일) ‘비소 박테리아, 진짜면 생명과학 최대 사건과학’이란 에세이를 썼다(과학카페15).

학부에서 화학,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기자로서는 비소가 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런 역설적인 제목을 붙였다. 실제로 발표가 있고 수일 뒤에 세계 곳곳에서 NASA의 발표가 엉터리라는 주장이 나왔고 ‘사이언스’ 같은 저명한 저널이 어떻게 이런 엉성한 논문을 실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올해 초 기자는 과학카페의 글들을 모아 에세이집을 냈는데 이때 비소 박테리아에 관한 그때까지의 진행상황을 덧붙였다. 아래는 책에 실은 내용이다.

●발표 6개월 만에 인쇄본 나와

“비소 박테리아 발표가 워낙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을까. 보통 논문이 온라인판에 나간 뒤 3~4주가 지나면 저널에 최종판이 실리는데 이 논문은 몇 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따라서 필자는 아마도 ‘사이언스’가 부담을 느끼고 발을 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년이 흐른 2011년 6월 3일자에 마침내 논문이 정식 게재됐다. 더 놀라운 사실은 6개월이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논문은 본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는 것. 따라서 여전히 비소 박테리아 논란은 진행 중이다.

‘사이언스’와 라이벌인 주간과학저널 ‘네이처’가 이 호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네이처’는 비소 박테리아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을 부각한 기사를 틈틈이 내보내더니 2011년 마지막호에 싣는 ‘2011년 화제가 된 1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로지 레드필드 교수를 선정했다.

미생물학자인 레드필드 교수는 NASA가 비소 박테리아 발견을 발표한 직후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이 발표가 엉터리라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실어왔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비소 박테리아인 GFAJ-1을 비소 환경에서 배양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예상대로’ 결과를 재현하는데 실패했다. 레드필드 교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DNA 어디에도 비소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펠리사 울프-사이먼 박사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며 대신 자신의 주장을 좀 더 확실하게 입증할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네이처’가 선정한 ‘2011년 화제가 된 10명’ 가운데 그녀의 이름은 없다.”(‘과학 한잔 하실래요?’ 55~56쪽)

●DNA 분석 결과 비소 안 나와

NASA 발표가 있고 19개월이 지난 ‘사이언스’ 7월 8일자 온라인판에 울프-사이먼 박사팀의 비소 박테리아 논문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문 2편이 실렸다. 하나는 레드필드 교수팀의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줄리아 보홀트 교수팀의 논문이다.

두 논문에서 저자들은 울프-사이먼 박사팀에서 분양받은 비소 박테리아로 실험한 결과 이들이 인 대신 비소를 써서 증식하는 현상을 관찰하지 못했고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 같은 정밀한 장비로 DNA를 분석한 결과 분자 골격에 비소가 참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레드필드 교수팀의 논문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연구팀은 먼저 과거 울프-사이먼 박사팀이 사용한, 비소가 들어있고 인은 없는 배지(+As/-P)에 사실은 인이 미량 들어있다고 말한다. 즉 +As/-P에는 약 3마이크로몰(몰은 농도단위이고 마이크로는 100만 분의 1이라는 뜻)의 인이 포함돼 있었다. 그 결과 이 배지에서도 박테리아가 증식할 수 있었다는 것.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인의 함량이 농도별로 정밀하게 조정된 배지를 만든 뒤 여기에 박테리아를 키웠다. 그 결과 박테리아 증식은 인 농도에 비례했다. 진짜 인이 없는 배지에서는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했다.

또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DNA에서 비소가 들어있었다는 울프-사이먼 박사팀의 ‘엉성한’ 데이터를 반박하기 위해 추출한 DNA를 수차례 씻어내는 과정을 더했다. 추출한 DNA에 존재하는 비소는 인 DNA 골격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비소 성분이 DNA가 침전될 때 딸려 붙어있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것. 실제로 세척 과정을 거치자 비소가 거의 사라졌다.

좀 더 확실한 검증을 위해 연구자들은 고도로 정제한 DNA 분자를 구성성분으로 쪼깬 뒤 액체크로마토그래피라는 장비로 성분별로 분리한 뒤 질량분석기라는, 분자를 이루는 원자성분까지 알 수 있는 장비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정상 DNA의 뼈대를 이루는 성분인 디옥시아데노신일인산(dAMP)의 존재는 확인했으나 비소가 인을 대신했을 때 나와야 할 디옥시아데노신일비산(dAMA)은 검출하지 못했다. 비소가 인을 대신해 생체분자에 참여했다는 주장을 반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결국 비소 박테리아는 비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생명체는 살지 못할 고농도의 비소 환경에서도 견뎌내고 살아남은 박테리아였던 것이다. 사실 울프-사이먼 박사팀 논문에 실려있는 박테리아의 사진을 보면 내부에 쌀알처럼 생긴 액포가 잔뜩 들어있다. 즉 녀석들은 세포 안으로 들어온 비소를 이 안에 농축시켜 독성을 최소화해 살아간 것이고 이런 전략을 쓰는 다른 비소 저항성 박테리아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처럼 비소 박테리아의 실체가 의심스러운 정황이 산재함에도 NASA 같은 일류 연구집단과 ‘사이언스’ 같은 일류 저널이 일을 벌인 건 뭔가에 홀렸다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이번 반박 논문은 분석 측면에서만 보자면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수준이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사이언스’가 두 논문을 싣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해프닝으로 물리학과 화학 법칙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충분조건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필요조건인 것만은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즉 수용액에서 비산 에스테르(비소가 DNA 골격에 참여할 때 갖게 될 형태)가 금방 가수분해로 파괴되는 건 플라스크 안에서나 세포 안에서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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