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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였나? 목록

조회 : 1240 | 2012-06-14

기자는 수년 전부터 ‘American Scientist’라는 격월간 과학잡지를 구독하고 있는데 내용이 꽤 고급스럽다(읽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 기사를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문데 며칠 전 온 5·6월 호를 보다가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을 한 편 읽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팻 쉽먼(Pat Shipman) 명예교수가 기고한 글로 요지는 개를 가축화한 것이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누르고 살아남은데 도움이 됐을 거라는 얘기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결론으로 이어진다.

쉽먼 교수는 25만 년 전부터 유럽과 근동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이 4만5000년 전에 유입된 현생인류와 1만 년 동안 공존하다가 사라진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사냥능력의 차이를 꼽았다. 참고로 지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현생인류의 인구수는 10배 증가한 것으로 추측된다.

 

●개가 있으면 사냥감 찾을 가능성 수 배 높아져

쉽먼 교수는 사냥 능력에서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개를 사냥의 파트너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개가 가축화된 건 대략 1만7000년 전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던 시기에는 아직 개가 없던(즉 늑대로 존재하던) 시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3만2000년 전 인류와 개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발굴이 이뤄지면서 인류와 개의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는 사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사실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는 개를 사냥에 이용해왔는데 ‘포인터(pointer)’처럼 이름이 익숙한 품종도 원래 사냥용 개다. 사냥꾼에게 사냥감의 위치를 독특한 포즈로 알려준다(point)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총으로 사냥을 하는 데 개가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를 토대로 수만 년 전 현생인류의 사냥에 개가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를 유추할 수는 없다. 쉽먼 교수는 아프리카나 중미에서 과거 인류와 방법상 큰 차이 없이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서 개의 유용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예를 들어 토끼만한 설치류인 아구티를 사냥할 때 개가 동행하면 아쿠티를 찾을 기회가 9배나 늘어나고 아마딜로의 경우는 6배 커진다. 또 개를 쓰면 사냥감을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무튼 네안데르탈인이 개를 키운 흔적이 발견된 곳은 없기 때문에 쉽먼 교수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침팬지의 눈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보다

지금까지도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여기서 얘기가 끝났다면 기자가 굳이 과학카페에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론은 지금부터다. 쉽먼 교수는 가축화가 해당 동물뿐 아니라 인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그 예로 오랫동안 목축을 해온 인류는 이유기가 지나서도 젖당분해효소가 활성을 잃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 반면 조상이 목축을 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은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늑대가 가축화된 개는 인류의 어떤 특성을 변화시켰을까. 옆의 사진을 보자. 진화적으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얼굴이다. 이 녀석이 사람과 서로 다른 종임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 무엇일까.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답이 다르겠지만 눈을 주목해보자. 그렇다. 침팬지의 눈은 흰자위가 희지 않다!

탁구공만한 눈알은 대부분 공막으로 싸여져 있는데 사람의 경우 흰색이다. 빛이 들어오는 통로인 눈동자(동공)와 눈동자의 크기를 조절하는 홍채를 합쳐 검은자위로 부르는 부분은 눈알 표면에서 일부일 뿐이다. 이는 침팬지도 마찬가지인데 침팬지는 공막이 짙은 갈색으로 검은색에 가깝다.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종의 공막 색깔이 정반대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개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공막 얘기를 왜 꺼냈을까. 쉽먼 교수는 다른 영장류를 포함했을 때 침팬지의 검은 공막이 아니라 사람의 흰 공막이 특이한 경우라고 설명한다. 즉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공막이 흰 색깔을 띠게 됐다는 것. 그리고 그런 변이가 일어나게 된 원동력이 바로 개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공막이 하야면 색깔이 있는 홍채가 눈에 확 띈다. 그 결과 눈을 굴리면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냥터에 나선 개는 흰 공막을 지닌 변이체 인간과 시선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는 눈치가 100단이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개와 인간(아기)은 머리가 아니라 눈이 향한 방향으로 주의가 향하지만 침팬지는 머리가 향한 방향을 따라간다고 한다. 또 사람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눈알의 더 많은 부분이 외부로 노출돼 있다. 즉 눈이 크다. 그 결과 흰자위가 더 많이 노출돼 시선의 방향을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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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흰자위가 있는 변이체 침팬지. 드물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열성돌연변이로 보인다. 아직 해당 유전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공 Geza Teleki)

 

그런데 까만 공막이 하얗게 되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단계의 변이가 축적되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드물기는 하지만 침팬지 가운데 공막이 하얀 변이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옆의 공막이 하얀 변이체 침팬지의 사진을 보라. 물론 조작된 사진은 아니다. 위의 정상 침팬지에 비해 왠지 더 사람에 가깝게 보이지 않는가!

쉽먼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상당히 그럴듯하다. 만일 이 가설이 맞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개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공막이 검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정보를 갖고 있다. 따라서 침팬지에서 공막이 흰 색이 되게 만든 돌연변이만 찾는다면 쉽먼 교수의 가설을 입증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해당 유전자가 침팬지형인지 현생인류형인지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눈두덩이가 툭 튀어나오고 이마가 낮고 몸집은 건장한, 한마디로 원시적인 모습의 인류로 보일 뿐인 네안데르탈인이 침팬지의 눈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건 정말 다른 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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