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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과학 목록

조회 : 7773 | 2014-10-14

세종대왕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은 늘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빕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으로는 경복궁과 더 멀리는 청와대가 보입니다. / 이미지 출처 : by antheaatlas-CC-BY-2.0(Flickr)

 

세종대왕은 조선의 제4대 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했고, 젊은 학자들을 등용해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구현했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 과학기구를 제작한 그의 노력은 후대에까지 큰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국토를 확장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서 훌륭한 치적을 쌓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 한 명이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산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세종대왕 시절 만들어진 ‘한글’이 손에 꼽히고요. 한글은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자음과 천지인 3개의 기호만으로 모음을 표현해 만든 글자입니다.

 

‘한글은 과학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디지털 시대에도 매우 효과적인,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다!’

한글을 극찬하는 전 세계의 유명한 학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램지(Ramsey) 교수가 대표적인데, 한글날이 되면 이렇게 멋진 문자가 나온 날을 축하해야 한다면서 매년 조촐한 자축연을 연다고 합니다.

 

한글, 즉 훈민정음만이 유일하게 이를 만든 사람과 반포일을 알 수 있는 문자입니다. 또 세계의 여러 언어 중에서 우리의 한글만이 유일하게 문자를 창제한 원리와 과정을 알 수 있는, 상세한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뉘어져 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썼고,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입니다. 해례는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 한글 창제에 관여했던 신하들이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 등에 대한 설명을 적은 책입니다. 예의 부분은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의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에 와서야 안동에서 발견돼 한글이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눈물겨운 노력 끝에 찾아낸 이 책은 일제시대 동안 비밀리에 숨겨 오다 해방 후에 영인본(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책)을 만들면서 세상에 공개됐답니다. 그리고 서울 성북구의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이 책은 1962년에는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이지요.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창제자, 창제 시기, 창제 이유, 문자의사용 방법, 창제의 세계관 등을 기록한 책(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소장처는 간송미술관. / 이미지 출처 : 국립한글박물관 보도자료

 

이번 주 따끈따끈 과학에서는 한글날을 기념해 ‘세종대왕’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물론 따끈따끈 과학 코너이니 과학적인 눈으로 살펴봐야겠지요? 과학자들이 존경하는 인물로도 손꼽히는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랍니다. 한글 창제만으로도 존경 받아 마땅하지만, 세종대왕은 역대 그 어떤 왕보다도 ‘과학’에 큰 관심을 보였던 왕이니까요.

자, 그럼 지금부터 세종대왕의 과학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알아보기

- 세종대왕, 과학적인 영농법을 고민하다!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사서적, 『농사직설』]

[농사에 영향을 주는 강우량 측정을 위한 ‘측우기’]

- 세종대왕, 정확한 시간 측정을 원하다!

[해시계인 ‘앙부일구’]

[자동으로 시간이 되면 종을 울리는 ‘자격루’]

- 세종대왕, 정확한 측정으로 공평한 기준이 있는 사회를 꿈꾸다!

[암행어사의 필수품, 유척]

   

* 생각 키우기

세종대왕이 우리 역사 상 가장 훌륭한 위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세종대왕, 과학적인 영농법을 고민하다!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사서적, 『농사직설』]

세종대왕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농업 생산량을 늘려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농사직설』편찬 전, 세종대왕은 왕이 직접 가꾸던 서울 동쪽의 농지인 동적전에 나가 중국에서 들여온 대표적인 농사 책이었던 ‘농상집요’에 나와 있는 방법대로 농사를 지어보았답니다. 그러나 수확이 신통치 않았고, 집현전 학사인 정초는 중국 화북 지방을 배경으로 만든 책이 농상집요인데, 화북지방의 황하강이 넘칠 때마다 질 좋은 황토가 쏟아져 땅이 비옥하고, 우리와는 기후가 다르니 그 책에 나온 대로 농사를 지어도 소용이 없음을 알렸다고 해요. 세종은 우리 땅과 기후에 맞는 농사 책을 편찬하라고 정초에게 지시했고, 이에 따라 정초는 국내 토지와 기후에 맞는 새로운 농사법을 정리하고 각 지역 농부들의 경험을 모아 함께 편찬한 책이 바로 『농사직설』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땅을 가는 방법, 모판을 만드는 방법, 비료 만드는 방법, 종자 선택과 보관법 등 거의 모든 농법 등이 담긴 서적이랍니다.

 

[농사에 영향을 주는 강우량 측정을 위한 ‘측우기’]

 측우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 측우대는 조선시대에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올려놓았던 대리석으로 만든 받침대를 말해요. 측우기는 세종대왕 때부터 만들어졌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1782년과 1811년에 제작된 측우대 그리고 1837년에 제작된 측우기가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농사는 내리는 비의 양(강우량)에 큰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 강우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측우기랍니다. 측우기는 빗물을 받아 자(주척)를 넣어 젖은 부분의 높이를 재는 비교적 간단한 원리로 되어 있어요. 겉보기에는 단순한 원통형 물그릇으로 보이지만 그 형태에는 치밀한 과학적인 설계가 숨겨져 있답니다.

입구가 너무 넓으면 비가 적게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 때 증발하는 빗물의 양이 많아질 수 있고, 반대로 입구가 너무 좁아도 빗물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요. 또 높이가 적당히 높지 않으면 땅에 튄 물이 그릇 안으로 들어가 정확한 측정이 어렵답니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 만든 것이 바로 입구 지름 14cm, 높이 약 31cm,로 총 3단으로 분리되는 구조랍니다.

측우기는 세종실록에 ‘세자(훗날의 문종)가 가뭄을 근심하여 구리로 만든 그릇을 궁중에 두어 빗물이 고인 푼수를 조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문종이 세자시절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측우기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인 우량계이고, 세계기상기구(WMO)의 규격에도 맞는 놀라운 발명품이랍니다.

 

 

 

- 세종대왕, 정확한 시간 측정을 원하다!

[해시계인 ‘앙부일구’]

양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845호인 앙부일구.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 가마솥을 뜻하는 ‘앙부’와 해그림자란 뜻의 ‘일구’가 합쳐진 것입니다. 둥근 것은 지구 모양을 표현했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과 계절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목판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 가로선은 계절선이랍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시각선에 그림자가 생겨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설전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었어요. 또 세종실록에는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넣어 시간을 글을 모르는 백성도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답니다.

 

[자동으로 시간이 되면 종을 울리는 ‘자격루’]

자격루

국보 제229호 창경궁 자격루.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해시계는 해가 있어 그림자가 생기는 낮시간에만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표준시계로 사용되어 온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였어요.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제작되었어요. 하지만 이 물시계는 오래 사용되지는 못했고, 중종 31년인 1536년에 다시 제작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답니다.

물시계의 원리는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묵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듭니다. 이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줍니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리고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 있는 것이랍니다.

 

 

 

- 세종대왕, 정확한 측정으로 공평한 기준이 있는 사회를 꿈꾸다!

[암행어사의 필수품, 유척]

암행어사 하면 우리는 말이 그려진 ‘마패’를 상징처럼 떠올려요. 하지만 마패는 말을 빌리기 위한 표식일 뿐이고, 진정한 암행어사의 상징은 왕이 내린 암행어사의 필수품, ‘유척’이랍니다. 유척은 20cm 남짓의 놋쇠로 만든 사각기둥 모양의 막대로 잘 휘어지지 않고 각 면에 다른 자를 새겨 넣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암행어사는 이 유척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막고자 했답니다. 지방 관리들이 세금을 걷는 도량형을 속여 백성들에게 과한 세금을 걷어 부정축재를 하지는 않는지, 규격을 무시한 형구로 지나친 형벌을 가하지 않는지 (형벌 도구 등의 크기가 나라에서 정한 기준에 맞는지) 측정해 백성의 억울함은 풀어주고 부패한 관리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답니다.

유척은 전국의 도량형을 점검하고 통일하는데 기준이 됐고,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바른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던 셈이지요. 정확한 측정으로 부정부패를 막고 공평한 기준이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 세종대왕의 의지가 담긴 상징적인 도구입니다.

 

  이외에도 세종대왕 시대에는 악기 조율기구 등 수많은 발명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천체 관측기구로 별의 움직임을 관측해 절기를 파악하는 혼천의도 세종 때의 소중한 과학 기구랍니다. 또 조선에 맞는 달력이 없음을 알고 조선에 맞춘 달력인 ‘칠정산’을 만들기도 했지요.

중국(북경)과 한양에서 바라본 칠정(해/달/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의 방향과 위치가 다름을 계산해 정확한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 서적이자 달력인 칠정산 또한 세종시대의 과학 유산이랍니다.

 

 

 

* 생각 키우기

세종대왕이 우리 역사 상 가장 훌륭한 위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확한 측정을 위한 노력과 세종 시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발명품들을 되새겨 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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