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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다 - 갈륨(Ga), 텅스텐(W) - 목록

조회 : 7017 | 2012-02-01

프로메테우스와 에디슨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손꼽히는 에디슨(1847~1931)의 발명품은 무려 1,000 개가 넘는다. 그의 대표적인 3대 발명품으로는 축음기, 영사기, 전구가 손꼽힌다. 지금도 사용하는 다리미, 와플 제작기, 토스터, 고데기 등도 역시 그의 발명품이다.










고데기, 다리미, 와플제작기, 토스터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백열전구의 발명이다. 비록 지금은 에너지 소모량이 크기 때문에 형광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24시간으로 획기적으로 바꾼 발명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





둥그런 유리구 내에 스프링 모양의 필라멘트가 지지대와 도입선으로 고정된 백열전구는 전류가 흐를 때 필라멘트의 저항에 의해 2,000 도 이상으로 가열되면서 빛을 낸다. 이처럼 필라멘트의 온도가 높을수록 전구가 밝기 때문에 필라멘트에는 녹는점이 3,410 도로 매우 높은 텅스텐이 사용된다. 그러나 텅스텐도 서서히 기화되기 때문에 전구에는 질소나 아르곤 등을 채운다. 백열전구의 유리가 검게 된 것은 기화된 텅스텐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텅스텐 필라멘트가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1879년 캄캄한 에디슨의 연구소를 환하게 밝혔던 것은 종이나 대나무를 태워서 얻은 탄소 필라멘트로 만든 백열전구였다. 무려 40 여 시간 동안 켜졌던 백열전구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인류에게 선물한 이후 에디슨이 인류에게 선물한 두 번째 불이었던 것이다.




니퍼
1884년, 영국 브리스톨 시에서 극장의 무대 배경을 그리는 것으로 생계를 잇던 마크는 떠돌이 개 폭스 테리어를 집으로 데려온다. 이 녀석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뒤꿈치를 깨무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니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니퍼와 축음기





3년 후 마크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프란시스가 니퍼를 맡아 기르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니퍼가 축음기의 나팔관 앞에 가만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은 마치 전 주인 마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였던 프란시스는 이 모습을 ‘주인님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는 제목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극작가 프랑크시멘에 의해 니퍼 이야기로 부활했다. ‘평소 음악을 즐겨듣던 주인이 죽자 이를 슬퍼하던 개 니퍼는 주인의 축음기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주인이 즐겨듣던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곡이 끝난 후 주인이 “니퍼 이리와~” 하며 자신을 불러 줄 것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었다.’




탄소에서 텅스텐으로
에디슨은 탄소 필라멘트를 수명을 늘이기 위해 전구를 진공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필라멘트가 기화하면서 전구가 더러워질 뿐 아니라 쉽게 끊어졌다. 이 문제는 전구에 게으른 기체로 불렸던 아르곤으로 채워 해결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나무 필라멘트 전구’는 1910년 쿨리지(1873~1975)가 텅스텐을 가느다랗게 뽑아내면서 텅스텐으로 교체되었다. 백열전구는 에너지 효율이 5%에 불과하다. 오늘날에는 백열전구보다 효율이 다섯 배나 높은 형광등을 주로 사용하며, 발광다이오드를 이용한 조명도 증가하고 있다. 19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백열전구는 에너지 효율이 낮기 때문에 2013년부터 생산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130 살이 넘은 백열전구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에디슨
“저는 더 이상 이 아이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지능이 모자란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좋아하며 자립심이 강하고 부지런했던 에디슨도 학교에서 포기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발명가였다. 그는 실패는 실패가 아닌 실패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던 성공적인 실험이라 여겼다. 이러한 그의 도전 정신은 수천 번의 실험 끝에 탄소 필라멘트를 발명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형광등의 등장
뉴턴(1642~1727)에게는 라이프니츠(1646~1716)가 있었듯이, 에디슨에게도 라이벌은 있었다. 테슬라(1856~1943)는 에디슨의 회사에서 교류 전기를 비롯한 형광등, 라디오, 리모컨, 발전기, 전자레인지등 800여 개를 발명했다. 후세 과학자들은 테슬라를 ‘에디슨을 능가하는 최고의 발명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1891년, 테슬라는 간단한 장치로 60 Hz의 가정용 전기를 수천 Hz의 고주파로 바꾸며,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만들 수 있는 테슬라 코일을 만들었다.










테슬라의 발명 그는 이것으로 형광등을 발명했다. 진공 유리관에 수은 증기와 아르곤을 넣고 밀봉한 형광등의 음극에 높은 전압이 걸면 전자가 튀어 나온다. 이 전자가 수은과 충돌할 때 방출하는 자외선은 유리관 안쪽에 칠해진 형광물질을 자극하여 가시광선을 내는 것이다. 형광등은 형광방전관, 안정기, 점등관, 콘덴서 등으로 구성된다. 전원이 연결되면 먼저 점등관이 방전되면서 형광등에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점등관을 ‘스타터’라고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센스가 없거나 느리게 반응하는 사람'을 ‘형광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테슬라 코일을 이용한 방전 실험(국립과천과학관에서 촬영)




형광등은 왜 깜빡거릴까?
가정용 전원은 1초에 60번씩 양극과 음극이 서로 바뀌는 교류이기 때문에 형광등은 1초에 120번 깜박인다. 그러나 눈은 잔상 효과 때문에 1초에 20번 이상의 깜박임을 인식할 수 없다. 영화도 실제로는 연속 동작이 아니라 필름이 1초에 24 장 바뀐다. 형광등의 수명이 다하면 제대로 방전되지 않기 때문에 깜박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버터 스탠드는 전자회로에 의해 1초에 두 극이 수만 번 바뀌기 때문에 깜박거림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 눈의 피로감을 줄여준다










형광등의 점등 원리




직류냐? 교류냐?
직류와 교류의 개발은 에디슨과 테슬라의 치열한 전쟁의 결과였다. 직류를 발명한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싼 값에 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포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직류 방식은 중간 손실이 커서 4 km 이상만 떨어져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테슬라는 효과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교류를 발명했으나 에디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자, 에디슨은 교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했으며, 사형 의자에 교류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전기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교류는 직류보다 적은 손실로 전류를 보낼 수 있었다. 에디슨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1895년 웨스팅하우스사가 교류발전기를 이용한 수력발전소를 나이아가라 폭포에 건설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은 테슬라를 기념하여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T로 결정했다. 에디슨과 함께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었던 테슬라는 에디슨과 함께라면 상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새로운 조명, LED
형광등이 끝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발광체를 찾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발광다이오드는 전자가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질 때 빛을 내는 반도체이다. 즉, 태양전지는 광을 전기로 바꾸지만, LED는 전기를 광으로 바꾸는 반도체인 것이다.










발광 다이오드 / 위키백과(www.wikipedia.org) (cc) Aney





LED는 낮은 전력으로도 작동되며 모니터에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색을 나타내려면 빛의 삼원색인 적색과 녹색, 청색 LED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LED와는 달리 청색 LED의 개발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 니치아 화학의 나카무라 슈지(1954~)가 질화갈륨을 이용한 청색 LED를 발명하면서 LED를 이용한 화면표시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LED는 효율이 높기 때문에 형광등을 대체할 조명기구의 광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직무발명과 2,200 억원
형광등과 형광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던 니치아 화학은 청색 LED를 개발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공에는 나카무라 슈지가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연구로 20세기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청색 LED를 개발한 것이었다. 청색 LED의 개발은 쉽지 않았다. 청색을 내는 에너지 차이를 가지면서, PN 접합이 가능한 반도체가 필요했다. 이러한 재료로 셀렌화아연과 질화갈륨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셀렌화아연을 연구했다. 나카무라 슈지는 질화갈륨을 선택했고, 자신이 개발한 장비로 청색을 내는 얇은 질화갈륨 막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회사로부터 받은 것은 20여 만원의 장려금과 과장으로의 승진이었다. 자신의 발명에 대한 대우와 폐쇄적인 학계에 실망한 그는 1999년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 그는 니치아 화학을 상대로 발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에서 2,200 억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 냈지만, 결국 2심에서 고등법원이 제시한 90 억 원의 보상금을 받고 소송을 끝냈다. 그는 자신의 직무발명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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