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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의 이슬 - 산소(O) - 목록

조회 : 8358 | 2011-11-15

불난 집에 부채질
불씨가 귀했던 옛날, 시집온 며느리의 큰 일 중 하나는 화로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다. 화롯불을 꺼뜨리면 게으르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불씨를 나누어주면 살림이 새나간다고 하여 잘 나누어주지도 않았다. 춥고 어두운 새벽, 어머니는 화로의 불씨를 옮겨 붙이면서 하루를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 폭발이나 번개에 의해 불씨는 얻는 사람들





‘불난 데 부채질 한다’는 속담이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 불이 더 활활 타오른다. 불은 탈 물질과 발화점 이상의 높은 온도 그리고 공기가 공급될 때 활활 타오른다. 따라서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것은 화난 사람을 더 화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촛불은 왜 꺼질까? 양초는 열에 의해 녹은 촛농이 심지를 타고 올라가서 기화된 후 연소된다. 따라서 바람이 불면 기화된 연료가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촛불이 꺼진다. 반면에 나무나 집은 바람이 불어도 탈 물질이 많고 공기가 잘 공급되기 때문에 불이 더 잘 번지는 것이다.




플로지스톤설
필요성을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와 물이다. 그러나 공기에서 산소를 발견한 것과,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임을 안 것은 불과 200여 년 전이다. 17 세기, 슈탈(1660~1734)은 ‘모든 가연성 물질에는 플로지스톤이 있어 연소될 때 플로지스톤이 소모되고 재가 남는다’는 플로지스톤설을 주장하였다. 나무가 탈 때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서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플로지스톤설은 여러 현상에 적용되었다. 심지어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플로지스톤으로 이루어진 혼이 빠져 나가서 몸이 차가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이나 인, 금속은 태우면 무게가 증가한다. 왜 그럴까? 플로지스톤설 지지자들은 음의 무게를 갖는 플로지스톤도 있다고 주장했다. 즉, 금속에서 음의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면 원래대로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일(1627~1691)은 미세한 불의 입자가 금속과 결합한 것으로 주장했다. 과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부아지에의 등장
라부아지에(1743~1794)의 등장은 새로운 화학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는 연소 실험을 수행하였다. 플라스크에 금속을 넣고 밀폐시켜 가열하면 무게가 일정하지만, 플라스크를 열면 공기가 들어가서 무게가 증가했다. 이때 증가한 무게는 금속을 공기 중에서 가열할 때와 같았다. 즉, 음의 플로지스톤이 빠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의 일부가 금속에 흡수되는 것이었다. 라부아지에가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울이었다. 그는 실험 중에 일어나는 무게 변화를 저울로 정확히 측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속과 반응하는 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O-X-Y-G-E-N
프리스틀리(1733~1804)는 훌륭한 실험 과학자였다. 그는 독창적으로 여러 기체들을 분리하였다. 특히 1774년 적색의 산화수은을 볼록렌즈로 가열할 때 수은이 생기면서 발생한 공기는 양초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성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공기는 플로지스톤이 없는 ‘탈플로지스톤 공기’이기 때문에 양초의 플로지스톤을 잘 받아들여 양초가 활활 타는 것으로 생각했다.










산화수은의 분해와 산소의 발견





이 말을 들은 라부아지에는 반대로 실험했다. 그는 수은을 넣은 밀폐 용기에 볼록렌즈로 수은을 가열했다. 이 때 표면에서는 적색의 산화수은이 생기면서 수은주가 높아졌다. 공기의 일부가 수은과 반응한 것이다. 공기 중의 어떤 성분이 수은과 반응한 것일까? 황과 인의 연소 생성물을 물에 녹이자 용액이 산성을 띠었다. 그는 공기 중에는 ‘산(Oxy)을 만드는(gen) 원소’가 있으며 이것이 연소에서 물질과 반응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는 이것을 ‘산소(O-X-Y-G-E-N)’라 불렀던 것이다.




불의 공기, 생명의 공기
1773년, 셸레(1742∼1786)는 진한 황산과 이산화망간을 반응시켜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의 공기(fired air)’를 얻었다. 그는 이 내용을 담은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으나, 출판사는 1777년에야 책을 발간했다. 프리스틀리가 탈플로지스톤 공기를 ‘생명의 공기(vital air)’로 발표한 이후였다. 그러나 불의 공기 혹은 생명의 공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리스틀리와 셸레는 이것을 단지 공기의 변형으로 생각했다. 반면에 라부아지에는 공기는 연소에 참여하는 산소와 참여하지 않는 질소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최초로 산소를 발견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프리스틀리? 셸레?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와 콜라
잇몸이 붓고 피가 나며 이가 흔들리고 관절과 다리가 뻣뻣해지고 아프며, 심하면 죽게 되는 괴혈병은 주로 선원들이 걸렸었다. 이것은 비타민C의 결핍으로 인해 걸리는 병이었지만 예전에는 그 원인을 신선한 채소 등을 먹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1771년, 프리스틀리는 밀폐된 용기 안에 식물이 있으면 양초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는 것을 발견했다. 식물은 잎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낸다. 따라서 괴혈병은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부족으로 생각되었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아있는 독일의 피어몬트 수가 괴혈병 특효약으로 팔리기도 하였다.










소다수 제조 과정





양조장 근처에 살았던 프리스틀리는 술이 발효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공기보다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술 통에서 넘치는 이산화탄소를 컵에 받은 후 물을 부어 녹였다. 이 물을 다시 이산화탄소를 모은 컵에 부는 과정을 반복하여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은 물을 만들었다. 이 물은 한때 괴혈병 치료제로 팔리기도 하였지만, 괴혈병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 다양한 향료를 첨가한 톡 쏘는 맛의 소다수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늘날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탄산음료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것이다.




화학원론
1783년, 라부아지에는 새로운 연소 이론을 기록한 ‘화학원론’을 발표하였다. 첫째, 화학반응 전과 후에 있어서 반응물과 생성물의 총질량은 일정하다. 둘째, 연소와 산화는 모두 물질과 산소의 결합이다. 셋째, 연소에서의 무게 변화는 오로지 산소와의 반응에 의한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실험 장치





화학원론은 뉴턴(1642~1747)의 ‘프린키피아’와 같은 위대한 책이었다. 물질의 연소로 기체가 발생하면 무게는 감소하지만, 산화물을 형성하면 무게는 증가한다. 즉, 연소란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가 물질과 반응하는 현상으로 생성물의 상태에 따라 무게가 다른 것이었다. 그는 화합물의 이름을 체계적으로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산화수은은 산소와 수은의 화합물이었다. 이로써 물질의 변화는 신비한 연금술적인 현상이 아니라 원자들 사이의 결합의 변화로 설명하는 근대화학이 시작된 것이었다.




마리
라부아지에는 뛰어났지만 외로운 화학자였다. 외로운 그의 동반자는 14살 연하의 아내 마리였다. 세금관리인이었던 라부아지에는 세금관리인조합장의 딸 마리와 결혼했다. 그녀는 공동연구자인 동시에 실험도구의 준비 및 정리를 하는 충실한 조수였다. 또한 뛰어난 그림 솜씨를 갖고 있었던 그녀는 라부아지에의 실험 장면이나 기구에 대한 사실적인 그림들을 남겼다. 라부아지에는 이를 토대로 ‘화학원론’을 출간했던 것이다.










마리 앤 라부아지에가 그린 호흡에 대한 실험장면




질량 보존 법칙
라부아지에의 또 다른 업적은 ‘질량 보존 법칙’이다. ‘화학 변화에 전후에 화학 변화에 참가하는 물질들의 총질량은 일정하다’는 이 법칙은 화학 변화의 중요한 단서였다. 이 법칙은 물질이란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단지 그들 사이의 결합만 재배열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돌턴은 ‘두 가지 원소가 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한 원소와 결합하는 다른 원소의 질량비는 간단한 정수이다’는 ‘배수 비례의 법칙’을 주장했다. 프루스트(1871~1922)는 ‘화합물을 얻는 방법에 관계없이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일정 성분비의 법칙은 발견하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법칙들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이론은 없었다. 원자론이 등장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라부아지에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단두대의 이슬
1789년, 프랑스는 왕실의 과도한 지출과 미국 독립전쟁 참전으로 재정은 파산 직전이었다. 재정을 채우기 위한 세금이 점점 과중해지자, 시민계급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마침내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라부아지에로서는 재앙이었다. 세금을 징수했던 그는 세금조합이 담배에 물을 넣어 세금을 물렸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그의 동료들은 과학적 공헌과 그가 진행하던 실험을 마칠 수 있도록 판결을 2주 만 늦춰달라는 청원이 올렸다. 그러나 코피나르는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라부아지에를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라그랑주(1736~1813)는 “라부아지에의 머리를 베는 것은 순간이지만, 같은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라부아지에



4원소 변환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모든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들이 갖고 있는 따뜻하거나 차갑고, 건조하거나 습한 성질은 서로 변환된다는 4원소 변환설을 주장했다. 즉, 따뜻하고 건조한 불이 꺼지면, 차갑고 건조한 흙인 재가 남고, 차갑고 습한 물을 가열하면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로 날아가고, 일부는 차갑고 건조한 흙이 된다는 것이다. 4원소 변환설은 연금술의 뿌리였으며 라부아지에가 등장하기 전까지 물질에 대한 불변의 진리였다. 그러나 저울로 무장한 라부아지에는 펠리칸 증류기로 물을 100일 동안 가열한 후 바닥에 생긴 고체와 용기의 무게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물이 변환된 것으로 믿었던 고체는 용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질량 보존 법칙으로 4원소 변환설의 오류를 증명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돌턴의 원자론
라부아지에의 빈 자리는 돌턴이 채웠다. 1803년, 돌턴은 물질은 잘게 쪼개더라도 사라지지 않으며, 일정한 크기와 질량을 갖는다는 ‘원자설’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설이 아닌, 데모크리토스의 입자설을 지지했다. 원자설로 질량 보존 법칙, 배수 비례 법칙, 일정 성분비 법칙들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이후 새로운 원자들이 발견되었으며 과학자들은 원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톰슨의 전자 발견, 러더퍼드의 원자핵과 양성자 발견, 채드윅의 중성자 발견, 한의 핵분열 성공, 그리고 쿼크의 발견 등이 이루어지면서 21세기 현대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화로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했던 산소의 발견과 질량 보존 법칙은 현대과학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양성자, 중성자, 원자핵, 헬륨의 원자 구조




주제!
물질 ,화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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