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사이언스랜드

전체메뉴보기 검색 과학상자

똥장군- 질소(N) - 목록

조회 : 6049 | 2011-11-08

똥장군
삼국지의 영웅, 촉나라의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장군이라는 뜻을 가진 오호장군으로 불린다. 그러나 시골에서 장군은 술이나 간장 또는 변을 담는 통으로서 담는 물건에 따라 오줌장군, 똥장군으로 불렸다. 그런데 왜 변을 모았던 것일까?










밭에 인분을 쏟아내는 농부





식물의 성장에는 다양한 원소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소, 수소, 탄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흙 속의 물에 의해 공급되지만 질소, 인, 칼륨 등은 부족하다. 단백질을 만드는 질소가 부족하면 잎이 노랗게 되면서 성장이 느려진다. 농부들은 콩과작물과 다른 작물을 번갈아 경작하였다. 콩과작물의 뿌리혹에 서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식물에게 공급하기 때문이다. 즉 질소는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흙으로 순환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변에 들어있는 질소는 식물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성분이었다. 따라서 변은 더럽고 피해야할 것이 아니라 재나 왕겨 혹은 짚이나 풀과 함께 썩혀 ‘거름’으로 만들기 위해 주워야할 비료였던 것이다. 이처럼 변은 귀한 물건이었으며 길가의 말똥이나 소똥을 줍기도 하였다. 이웃집에 놀러 가더라도 변은 집에서 봤다. 참을 수 없어 이웃집에서 변을 보면 다음날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서 변을 보도록 했다. 이처럼 변을 채운 똥장군과 오줌장군은 농부의 소중한 거름이었다.










변을 싸는 아이와 똥돼지 (제주 닥종이 박물관에서 촬영)




새똥, 구아노
19세기 초까지 질소는 콩과 식물이나 번개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질소 화합물과 칠레초석이라는 구아노(NaNO3)로 충분했다. 구아노는 가마우지 등의 배설물이 오랫동안 거대한 산처럼 쌓인 새똥으로 페루의 무인도에서 발견되었다. 원주민들은 농사에 이용하고 있었지만, 페루를 정복한 스페인은 구아노를 무시했다. 정복자들에 의해 원주민들이 죽거나 쫓겨나면서 구아노는 점차 잊혀졌다. 그러던 19세기 말, 유럽은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마침내 영국은 구아노를 주목했고 투자를 시작했다. 내전으로 분열되었던 페루에는 봇물 터지듯 돈이 넘쳐났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지 새똥을 파내는 것뿐이었다. 페루는 구아노를 담보로 돈을 빌려 대규모의 설탕 농장에 투자했으나, 이것은 구아노 저주였다. 1876년, 투자에 실패한 페루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구아노 산업을 국유화했다. 다급해진 영국은 페루와 칠레의 국경에서 새로운 구아노를 발견했다. 이것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페루와 칠레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칠레에게 패한 페루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그러나 칠레도 구아노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었다. 칠레도 구아노를 국유화 선언하자, 내전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후로 페루와 칠레는 새똥, 구아노 그리고 질소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호초 섬에 죽은 해조와 물고기, 대변, 알 껍질 등이 퇴적되어 쌓인 구아노




최무선과 염초
고려 말, 최무선(?~ 1395)은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화약의 개발을 시도하였다. 화약의 원료인 숯과 황, 그리고 염초를 섞는 비율과 염초(초석 혹은 질산칼륨, KNO3) 제조법은 원나라의 기밀이었다. 그러나 최무선은 이원에게서 염초 제조법을 배워 20여 년의 노력 끝에 화약을 개발하였다.










신기전 (cc) skinnylawyer





최무선은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무기를 개발하여, 왜구를 물리쳤으며 쓰시마 정벌에도 큰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로켓 100발을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신기전도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개량한 것이다. ‘신전자취염초방’에 의하면 염초는 사람이나 가축의 변과 나뭇재로부터 제조한다. 즉 변에 있는 요소가 암모니아로부터 생긴 질산과 잿물 속의 칼륨이 결합하여 염초가 되는 것이다. 화약에서 염초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연소는 탈 물질이 산소와 반응하여 열과 빛을 내는 현상이다. 따라서 폭약이 짧은 시간에 연소하려면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다. 폭죽은 염초의 열분해로 생긴 많은 양의 산소로 황과 숯을 태운다. 즉 대포알은 좁은 공간 안에서 연소에 의해 발생한 기체의 압력에 의해 강하게 발사되는 것이다.




질소
구아노는 페루에서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인구는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20세기 초 세계 인구는 16억 명에 달했다. 거름과 구아노만으로는 충분한 질소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질소 부족’이라는 식량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식량 생산을 늘여야만 했다. 당시에 주어진 과제는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는 것이었다. 암모니아는 오스트발트(1853~1932)법에 의해 쉽게 염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누가 이 당면 과제를 해결할 것인가?




공기로 빵을...
라부아지에는 양초를 태운 공기에 쥐들을 넣자 바로 질식하였다. 이에 연소 후 남은 공기는 생명 현상에 필요없다는 뜻의 ‘아조트’라 불렀다. 그러나 곧 초석을 만든다는 질소(nitrogen)로 바뀌었다. 질소는 질식시키는 기체란 뜻이다. 식물은 산소를 광합성에 이용하는데, 왜 질소는 불가능할까? 그것은 질소와 산소의 결합 다르기 때문이다. 산소와는 달리 질소는 질소 원자들이 삼중결합을 형성한다. 따라서 질소와 질소의 결합을 끊고 반응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과연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꿀 수 있을까? 1904년, 마침내 하버(1868~1934)는 촉매를 사용하여 600~900도, 200기압에서 하루에 2 kg 정도의 암모니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도전자는 보쉬(1874~1940)였다. 1913년, 그는 다양한 촉매를 시험한 끝에 철 촉매와 500도, 100기압의 조건에서 하루에 20 톤의 암모니아를 만들어 냈다. 드디어 공기로 빵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하버-보쉬법은 식량 증산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인류가 섭취하는 단백질의 1/3은 이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빵과 제1차 세계대전
하버의 목적은 단지 빵이 아니었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독일은 폭탄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드는 질산이 필요했다. 마침내 질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하버-보쉬법은 인류에게 양날을 가진 칼이었다. 연합군은 칠레초석이 독일로 유입되지 않도록 해상을 철저히 봉쇄했다. 연합군은 전쟁이 쉽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독일은 4년간이나 전쟁을 수행했다. 그 뒤에는 질산 제조법인 하버-보쉬법이 있었던 것이다.










암모니아의 두 가지 얼굴




노벨과 니트로글리세린
폭약을 만드는 니트로글리세린은 약한 충격에도 폭발했다. 1863년,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채운 용기에 점화플러그를 끼운 뇌관을 만들었다. 이것은 점화장치에 설치한 소량의 화약으로 니트로글리세린 폭발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폭발사고로 동생과 4명의 목숨을 잃었다. 노벨에게는 더욱 안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니트로글리세린 운반 상자에 톱밥 대신에 규조토(규조토는 돌말로 불리는 규조류가 퇴적된 지층이 땅위로 나온 것)를 채우게 되었다. 얼마 후 노벨은 용기 밖으로 새어나온 니트로글리세린이 규조토에 흡수된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규조토와 섞인 니트로글리세린은 매우 안전했다. 최초의 다이너마이트는 24.5%의 규조토에 75%의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착시키고 소량의 탄산나트륨으로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노벨과 NO
다이너마이트 공장에서는 특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협심증(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해 일어나는 빈혈. 심장에 산소 공급이 부족하면 가슴을 죄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을 앓고 있던 인부들의 증세는 휴식 기간인 주말에 더 심화되었다. 인부들이 무의식적으로 섭취한 단맛나는 니트로글리세린이 협심증을 완화시킨 것이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이 어떻게 협심증을 완화시켰을까? 그것은 니트로글리세린이 분해되면서 생긴 산화질소가 혈관을 확장시킨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벨도 협심증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의 효과를 믿지 않았고, 결국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




불행했던 하버
전쟁에 패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연합군에게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하버는 조국 독일을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시작했다. 그는 바닷물에서 수백만 톤의 금을 채취하기 위해 비밀리에 10년 동안 세계의 바닷물을 실험했다. 그러나 바닷물에 함유된 금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그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유태인이었지만, 철저히 독일인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자인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태인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치는 하버 연구소의 유태인들을 해고했으며 하버는 이에 항의하면서 스스로 사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초청으로 런던으로 갔던 그는 스위스 바젤의 조그만 호텔방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웃음가스, N2O
마취제가 발명되기 전에는 수술은 공포, 그 자체였다. 대마초나 아편 혹은 술로 환자를 취하게 만든 후 수술하기도 했다. 또는 환자를 수술대에 밧줄로 묶은 후 보조원이 환자를 붙잡고 있는 동안, 의사가 톱이나 칼로 환부를 도려내기도 했다. 수술 후에는 인두로 지져 지혈하였다. 고통은 상상할 수 없었으며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웃음가스





1772년, 프리스틀리(1733~1804)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발견하여 ‘웃음가스’라고 불렀다. 이 기체를 마취제를 활용한 사람은 롱(1815~1878)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친구들에게 웃음가스와 비슷한 에테르를 주었다. 그 때 피로연에서 상처를 입은 친구가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에테르를 수술에 사용했다. 마침내 환자의 발가락을 통증 없이 절단함으로서 마취제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1844년, 치과의사 웰스는 ‘웃음가스 쇼'를 보고 있었다. 공연 도중 웃음가스에 취한 지원자를 나무로 때렸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웰스도 지원하여 체험해 보았으며 역시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후에 그는 동료에게 자신이 잠든 사이에 사랑니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웃음가스를 맡고 잠이 든 그는 동료가 사랑니를 찍는 동안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웃음가스 마취제가 개발된 것이었다.




주제!
물질 ,화합물
관련단원 보기
*중2학년 2학기 물질의 특성
조상들의 생필품 나노 물질 숯
*중3학년 1학기 화학 반응에서의 규칙성
단호박 영양밥
*중2학년 2학기 물질의 특성
왜 어른들은 화장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
*초등3학년 1학기 물질의 성질
이산화탄소(CO2)가 뭐기에? - 온실효과
*초등3학년 1학기 물질의 성질
사과도넛
사진올리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