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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인은 성형수술을 했었다? 목록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에서 발견된 가야인들의 집단 무덤에서는 수많은 가야인들의 뼈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
아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대 가야인들과는 달리 얼굴 폭이 좁고 미간에서 정수리까지의 길이도 짧은 특이한 인골
들이 있었다. 인골은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더없이 중요한 유물이다. 이 인골을 통해 가야인의 생김새는 물론
생활모습까지, 가야의 생생한 역사를 되살린다.



수수께끼의 인골
김해시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예안리. 그저 평범한 농촌의 한 귀퉁이 논에서 1600년 전의 역사가 깨어난 것은 우연
에 의해서 였다. 당시 땅주인이 논을 개간하려고 흙을 파내자 예사롭지 않은 유물이 나왔던 것이다. 땅속에서는
오래된 무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고고학자들은 이 놀라운 발견에 주목했다. 그곳은 가야인들
의 집단 무덤터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발견은 가야인의 인골이었다.

편두를 한 가야인
중국의 역사서에는 가야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
게 했다. 지금도 진한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납작하다’ 기록 속의 진한에는 김해지역의 가야인도 포함된다. 머리
를 납작하게 한다고 해서 그 당시에는 이를 편두라고 했다. 역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편두의 실체를 예안리에서 확
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야인들은 어떻게 편두를 만들었을까.

예안리 무덤터
가야인들이 조성한 예안리의 무덤은 밀집된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발견된 인골만 해도 190여 체.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인골을 모두 합해도 예안리 인골의 숫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 예안리 땅에서만 이렇
게 많은 인골이 나왔을까. 겉으로 보기에 무덤터는 그저 평범한 땅이였지만 그곳에 뜻밖의 실마리가 있었다.

인골에 담긴 가야인의 삶
1600년 전 가야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질병을 앓았으며, 또 무엇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을까? 인골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특히 인골 중에서도 치아는 가장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예안리 가야인의 인골
들은 기나긴 세월의 침묵을 깨고 자신들의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야와 늑도 그리고 일본
경남 사천시 앞 바다에 위치한 늑도는 100여 가구가 살고있는 작은 섬이다. 섬전체가 유적지라고 할 정도로 늑도
에서는 지금도 기원 전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런데 늑도에서 출토된 인골이 예안리의 인골과 똑 같은 모습
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안리 가야인들과 같은 계통이었던 것이다. 늑도에서 발굴된 한 인골은 송곳니를 뺀 것
으로 보이는 발치의 흔적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큐슈 지방에서도 발치를 한 인골이 출토되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똑 같은 풍습이 나타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실마리를 찾은 것은 늑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였
다.

가야 사회의 변화
4세기 이후 가야인골에서 편두의 풍습은 사라진다. 그리고 무덤의 양식도 변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이전에는 없었
던 매장문화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순장이다. 이것은 가야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문화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 http://yushin.or.kr/@history/dvd-kbshistory/kbs0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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